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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76년 신안 해저유물 발굴 시작

입력 | 2006-10-11 03:00:00


1976년 1월 어느 날 전남 신안군 지도면 도덕도. 트롤 어선으로 고기를 잡던 어부의 그물에 개흙과 굴 껍데기가 다닥다닥 붙은 항아리가 걸려 나왔다. 집에 가져가 잘 씻어 놓고 보니 청자였다. 어부는 청자를 군청에 신고했고, 이후 신안 앞바다에는 보물선이 가라앉아 있다는 소문이 퍼져 나갔다.

재빠른 도굴꾼들은 바다에서 원나라와 고려시대의 명품 도자기들을 건져 올려 일본에 몰래 팔았다. 9월에야 낌새를 챈 경찰이 도굴꾼들을 붙잡아 보니 그들의 창고에서 국보급 보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문화재관리국은 그해 10월 11일에 ‘신안해저유물 발굴조사단’을 구성해 본격적인 발굴을 시작했다.

유물 발굴에는 해군 제5150부대 해난구조대 잠수대원들이 참여했다. 그러나 당시로선 최신 장비를 갖춘 해군도 유물의 위치를 잘 찾지 못했다. 결국 해군은 목포경찰에 붙잡힌 도굴꾼들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이후 신안 앞바다는 마치 끝없이 보물을 토해 내는 요술항아리 같았다. 국보급 고려청자, 송나라와 원나라의 청자와 백자, 흑유(黑釉·검은 빛깔의 도자기), 청동 촛대, 향로, 거울, 벼루, 맷돌, 동전 등이 그득한 나무상자가 고스란히 올라왔다. 1984년 9월까지 11차례 인양에서 나온 유물은 모두 2만2007점. 이 중 청자 1만2359점을 비롯해 도자기만 해도 무려 2만661점이었다.

발굴 과정에서 나온 ‘지치삼년(至治參年)’이라는 목패와 ‘경원로(慶元路·지금의 중국 닝보·寧波)’라고 새겨진 ‘물표’(화물꼬리표)는 이 배가 1323년경 닝보 항을 출발해 고려를 거쳐 일본의 하카타(博多)와 교토(京都) 쪽으로 가다 난파된 원나라 상선임을 알려줬다.

신안해저유물 발굴은 땅만 파헤치던 우리나라 고고학계에 ‘수중 고고학’의 진가를 깨우쳐 준 출발점이었다. ‘신안선’의 선체와 유물이 650년이 넘도록 훼손되지 않았던 것은 갯벌 속에 파묻혀 진공상태가 유지됐기 때문이었다. 중국, 한국, 일본 등 동북아 3개국 무역로로 활용됐던 서남해는 이후 ‘보물선의 무덤’으로 주목을 받았다.

올해로 발굴 30주년을 맞은 신안선은 14세기 동아시아 세계의 한 단면을 증언하는 거대한 타임캡슐로 평가받는다. 이 배는 중국 남부의 광저우(廣州), 항저우(杭州), 닝보 등의 국제 무역항에서 출발해 서쪽으로는 동남아, 인도, 중동을 거쳐 유럽까지, 동쪽으로는 고려와 일본까지 이어졌던 ‘해상 실크로드’가 실재했음을 보여 주는 문화유산이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