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배인준 칼럼]노 대통령에게 기회 남아 있다

입력 | 2006-09-25 20:20:00


누가 다음 대통령이 될지 다들 궁금해한다. 현직(現職)에서 워낙 마음이 떠나 더 그렇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 사이에서 배싱(bashing·때리기)을 넘어 패싱(passing·넘겨 버리기)의 대상이 되다시피 했다. 정치권에서도 ‘노(盧) 빼고 헤쳐 모여’라는 말이 나온다.

하지만 그의 임기는 거의 1년 5개월 남았다. 좋은 방향이건, 나쁜 방향이건 국민에게 미칠 영향력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가 정말 마음먹고 하겠다고만 하면 건설도, 파괴도 가능하다.

우선 자신의 정신상태가 문제다. 지금이라도 많은 국민과 ‘윈윈’할 수 있다고 믿고 길을 찾느냐, 다수의 박수를 받으며 청와대를 떠나기는 글렀다고 자포자기(自暴自棄)하느냐에 따라 상황은 결정적으로 달라진다.

그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도 중요하다. 80% 안팎이 노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은 현실이다. 그러나 대통령을 최악의 희화(戱畵)로 만드는 ‘노무현 유머’로 실정(失政)에 복수한다고 산적한 문제들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요컨대 대통령도, 국민도 마음이 꼬여 있기만 해선 안 된다.

국민의 신망을 잃은 지금의 상태는 노 대통령에게 오히려 기회다. 결과로서 국리민복(國利民福)에 도움이 될 선택을 구체적으로 하기만 하면 반색할 국민이 많을 것이다. 대통령이 칭찬에 목말라 있다면, 국민도 박수칠 일을 기다리고 있다고 봐야 한다.

노 대통령은 모레 밤 방영되는 MBC TV ‘100분 토론’에 출연해 여러 현안에 관한 의견을 밝힐 예정이다. KBS 특별회견을 한 지 4주 만에 또 TV를 통해 발언하려는 걸로 봐서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하다.

미디어 정치가 성공하는 것만은 아니다. 또 노 대통령은 어느 전직(前職)보다도 많은 말을 해 왔지만 득(得)보다 실(失)이 컸다. 이번에도 국민을 논파(論破)의 대상으로 여기면 논쟁만 불러일으키고 반감을 확산시키기 쉽다.

잠시 뉴스의 중심에 서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면 발언 내용과 화법(話法)이 달라져야 한다. 예컨대 안보, 경제, 교육과 관련해 부작용과 국민 부담을 키우고 있는 정책들을 수정(修正)하기는커녕 고집하는 논리만 편다면 결국 손해 보는 TV 출연이 되고 말 것이다. 말 많은 대통령이 말로만 버티려 한다는 소리를 또 듣지 않기 바란다.

전시작전통제권 단독 행사를 자주(自主)의 잔칫상 메뉴로 올려놓는다 해도 미국이 얼마만큼 도와주느냐가 우리 안보의 최대 변수다. 이런 마당에 자주만 외치니, 주체(主體)를 입에 달고서도 미국의 체제보장에만 매달리는 북한과 동렬에 세워지는 것이다.

경제성장의 중요성을 가벼이 여기는 발언도 거두는 게 좋다. 지난날의 고도성장이 없었다면 국내 극빈층이 북한 중상층보다 나은 복지(福祉)를 누릴 수 없다. 세계 역사에 경제를 키우지 않고 자주를 이룬 나라도 없다. 중국과 인도가 세계의 총아가 되는 것도 고도성장을 빼고는 설명이 안 된다. ‘이념 장사’에 매달리느라 성장의 조건들을 내팽개친 결과가 여러 경쟁국의 발밑을 맴도는 저성장 만성화다.

주택, 토지 가릴 것 없이 부동산정책은 총체적 실패다. 부동산 부자 2%를 때려 98%를 행복하게 해 주겠다던 약속은 한마디로 사기(詐欺)가 돼 버렸다. 대통령을 비롯해 부동산정책에 관여한 사람들의 시장(市場) 예측력은 강남 주부들을 따라가기에도 족탈불급(足脫不及)이다. 빈민운동 하는 자세로 부동산시장을 다스릴 수 있다고 생각한 것부터가 잘못이다.

평등코드 교육도 사교육비 유학경비 등 국민의 부담만 키우고 있다. 청와대에 사람입국위원회를 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자성(自省)은 없고 변명과 책임전가(責任轉嫁)만 있는 것이 ‘노 정부 DNA’라고들 한다. 이 정부에 희망이 있으려면 ‘진지한 반성과 용감한 자기교정(矯正)’이 필요하다. 모레 노 대통령의 TV 출연이 한 계기가 된다면 본인을 위해서나 국민을 위해서나 다행이다. 실패한 코드의 해체를 통해 ‘등 돌린 80%에게’ U턴의 가능성을 보여 주는 것이 사즉생(死卽生)의 길이다. 레임덕(임기 말 권력누수)이 괴롭게 다가올수록 국민에게 통하지 않는 노선과 정책을 용기있게 버려 지지율 만회를 꾀할 일이다.

배인준 논설실장 inj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