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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인준 칼럼]‘포스트 노무현’을 걱정하는 이유

입력 | 2006-08-28 21:19:00


10, 20대가 청장년이 됐을 때 고생길이 훤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30대가 중년에 접어들 때나 40, 50대가 노년을 맞을 때도 비슷하지 싶다. 조국을 등지지 않고, 나라의 안위(安危)를 생각하며, 세금 꼬박꼬박 내는 국민으로 살아가려면 지금보다 두 배는 힘겹게 벌어야 할 것 같다.

왜 북한에 퍼 주기만 하느냐고 따지는 사람들이 아직은 그럭저럭 버티지만 10년쯤 뒤엔 반(反)민족 범죄자 취급 당할지도 모른다. 이미 북은 지난달 미사일 발사 후의 남북장관급회담에서 “선군(先軍)이 남측의 안전을 도모해 주고, 남측의 광범한 대중이 선군의 덕을 본다”고 주장했다. 그러니 열심히 벌어서 갚으라는 얘기다. 쌀 50만 t과 경공업 원자재를 선뜻 주지 않자 “응당의 대가를 치를 것”이라는 협박까지 날렸다. 이달에 정부는 수해복구비 명목으로 2300억 원어치의 쌀과 물자 지원을 결정했다.

윤광웅 국방부 장관은 “북이 핵무기 1, 2개를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고 국회에서 공언했다. 북한은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유화정책과 지원을 악용해 핵을 개발해 왔다. 그리고 핵 프로그램을 좀처럼 포기할 리 없다.

한미 정부는 북핵 대응을 놓고 등을 돌린 지 오래다. 공조를 말해 봤자 이견을 좁힐 수 없기 때문에 내달 정상회담도 북핵 얘기는 건너뛰고 한미동맹만 원칙적으로 확인하는 만남이 될 공산이다. 그런 동맹이 온전하고 유효한 동맹은 아니다. 한국 정부는 북의 핵개발을 계속 도와주는 셈이다.

소년이 청년이 될 즈음, 북은 미사일에 이어 핵 능력을 확실하게 보유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 않아도 ‘서울 불바다’ 위협과 ‘북이 남을 지킨다’는 강변(强辯)을 섞어 시도 때도 없이 ‘젖소의 젖을 짜대라’는 저들이다. 달리 가진 게 없으니 핵을 무용지물(無用之物)로 썩힐 턱도 없다. 1995년 이후 올해 7월까지 우리 정부와 민간의 공식 대북 지원액은 1조7000여억 원으로 집계됐지만 0이 하나 더 붙을 것도 예상해야 한다. 한국에 더 희한한 정권이 들어서서 민족세(民族稅) 같은 걸 만들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 마커스 놀랜드는 “북한 경제가 갈수록 악화될 것이므로 지금이라도 흡수통일하지 않으면 통일비용이 더 들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남이 북을 흡수하기는커녕 북에 끌려 다니느라 정신 못 차릴 지경이다.

우리 국민의 근로 의욕이 세계 주요 60개국 중에 37위로 떨어졌다는데, 이래서는 김정일 정권까지 먹여 살리기 어렵다. 자신을 위해 벌고, 북을 위해 또 벌어야 한다. 특히 젊을수록 오랜 고생을 각오해야 한다.

반면에 미국 국민은 한국 대통령에게 고마워해야 할 것 같다. 자주정신이 워낙 강한 노무현 대통령 덕분에 미국인은 주한미군을 위한 세금을 덜 내도 될 전망이다. 미국 정부는 전시(戰時)작전통제권을 당장 환수(단독 행사)해도 큰 문제없다는 노 대통령의 판단을 최대한 존중해 “2009년에 가져가라”고 우리 정부에 통보해 왔다. 그 대신 한미가 4 대 6으로 분담해 온 주한미군 방위비를 5 대 5로 나누자는 청구서가 붙어 있다.

이백만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은 ‘국민소득 100달러 시대의 옷을 2만 달러 시대에도 입어야 하느냐’며 작전권 환수 신중론을 ‘미국 의존(예속)’이라고 질타했다. 2만 달러 시대의 ‘자주복(自主服)’을 입는 데 드는 거금은 지금의 모든 연령층은 물론이고 앞으로 태어날 세대도 부담해야 한다. 참고삼아 전시작전권 공유개념을 갖고 있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을 살펴봤더니 영국 프랑스 독일을 비롯한 10여 개 나라는 국민소득이 2만∼5만6000달러였다.

전시작전권을 2012년쯤 받아낼 계산이던 우리 군(軍) 당국은 전력(戰力) 증강에 바빠졌다. 미국 군수업체들은 튕기면서 한국 특수(特需) 재미를 보게 생겼다.

한미동맹의 격변을 보면서 주한미군의 완전철수도 예견해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 북은 대남(對南) ‘핵 장사’로 더 재미를 볼 것이다. 그때쯤엔 일본도 전혀 다른 눈빛으로 한국을 내려다볼 것이다. 중국이 북을 버리고 남을 도울 가능성은 없다. 자주비용의 계산서는 계속 쌓일 것이다. 어린 세대까지 ‘포스트 노무현’을 걱정해야 할 이유다.

배인준 논설실장 nj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