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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허승호]통화 기록 ‘도청’

입력 | 2006-08-21 03:00:00


200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광주 지역 일부 응시생이 휴대전화를 이용해 부정행위를 했다. ‘선수’로 불리는 우수 학생이 휴대전화를 이용해 답을 바깥의 ‘중계조’에 보내면, 중계조가 문자서비스를 이용해 ‘수혜 학생들’에게 재송신하는 방식이었다. 경찰이 사건의 전모를 밝힐 수 있었던 것은 이동통신회사들이 문자메시지를 보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경찰은 시험 당일 송신된 문자 중 숫자로 구성된 것을 모두 넘겨받아 분석해 비슷한 일이 서울에서도 일어났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 사건이 알려지자 “통신사가 왜 고객의 비밀을 가지고 있느냐”는 이용자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이에 놀란 통신사들은 2005년 2월 이후 문자메시지 내용을 보관하지 않는다. 수사 당국은 “계속 보관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통신사들이 거절하고 있다. 다만 요금 청구를 위해 ‘언제, 어떤 번호로 문자가 발송됐다’는 명세만 6개월간 보관한다.

▷그렇다면 고용주가 개설·관리하고 요금을 내는 유무선전화 통신 명세나 e메일 내용을 고용주가 들여다볼 수는 있을까. 기술적으로는 가능하겠지만 ‘원칙적으로 안 된다’는 것이 정보통신부 해석이다. 회사의 영업비밀 보호를 위해 고용주가 피고용인의 e메일을 열어 볼 수 있도록 별도로 합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누구든 개인의 통신 비밀을 침해할 수 없다는 것이 통신비밀보호법의 입법 취지다.

▷김대중 정부에서 국가정보원은 ‘휴대전화는 기술적으로 도청이 불가능하다’고 광고를 내는가 하면, 휴대전화 도청 사실을 보도한 동아일보 기자들을 제소했지만 도청은 사실로 확인됐다. 국정원은 휴대전화 도청 장비를 자체 개발한 사실이 드러났고, 전직 국정원장 2명은 1심에서 도청 관련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대통령비서관이 유진룡 전 문화관광부 차관의 통화 기록을 불법 조회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통신 명세를 조회하려면 검사의 청구로 법관이 발부한 허가서가 있어야 한다. 대통령비서관이 통화 명세 불법 조회를 했다면 도청과 같은 국가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

허승호 논설위원 tiger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