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외교 안보 현안에 대해 ‘자극적인 표현’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일이 빈발하면서 그 배경에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국무회의에서 장관들이 국회에서 외교안보 정책의 문제를 추궁당할 경우의 대응방식을 예시하며 “(의원들에게) ‘그러면 북한 목조르기라도 하자는 말씀입니까’, ‘미국은 오류가 일절 없는 나라라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반박하라”고 주문했었다.
9일 연합뉴스와의 회견에선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문제를 언급하며 “한국 대통령이 미국 하자는 대로 ‘예, 예’ 하길 한국 국민이 바라느냐”고 했다. 또 “안보 장사 시대에 성공한 일부 신문이 지금도 그 시대에 살고 있지 않나”고 말하기도 했다.
외교안보는 상대국이 있다는 점에서 ‘당신네 나라는 오류가 없느냐’는 식의 발언은 국가 최고지도자가 공개석상에서 해서는 안 될 금기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런 발언은 결국 국익을 손상시키는 일이라는 것이 보수층의 시각이요, 이 때문에 대통령의 발언을 둘러싸고 국내에서 격렬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의 발언이 반드시 반발만 사는 것은 아니다. 친노(親盧)와 진보 진영에는 “우리나라의 자존심을 세우자는 것으로 맞는 말이다”고 옹호하는 분위기도 있다.
당장 열린우리당의 상황이 그렇게 돌아가고 있다.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은 5·31지방선거와 7·26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잇따라 참패한 이후 ‘친기업 정책’을 추진하며 부동산 정책 등에서 강경책을 고집하는 청와대와 각을 세우고 있지만 노 대통령의 외교안보 발언에 대해서만큼은 이론을 제기하지 않았다.
10일 열린 열린우리당 원내대책회의에서는 온건파 의원들조차 노 대통령의 전날 발언을 옹호하며 “최근의 언론 보도는 제2의 금강산댐 보도를 보는 것 같다”고 오히려 언론보도를 성토했다. 일부에서 ‘대통령 탈당하려면 하라’는 소리가 나오던 최근 분위기와는 딴판이다.
열린우리당이나 친노 등의 입장에서 대북관이나 안보관은 한나라당과 차별화할 수 있는 유일한 이슈라는 점에서 노 대통령에게 동조할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는 분석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 사이에선 노 대통령이 집권 후반기로 가면서 ‘안보 이슈’로 진보 진영과 반(反) 한나라당 세력의 결집을 도모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이 노 대통령의 표현대로 ‘안보장사’를 통해 보수층을 결집시켰다면 노 대통령도 지지층을 결집시키거나, 이탈을 막기 위해 외교 안보 문제를 부각시키고 있다는 것. 이른바 ‘신(新) 안보상업주의’가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된다.
중앙대 국제대학원 김태현 교수는 “독재정권이든 민주정권이든 외교안보 문제로 국내정치적 어려움을 전환해 보려는 것은 정치적으로 확립된 가설이다”고 말했다.
그런 맥락에서 노 대통령이 제기하고 있는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는 정책적 사안이 아니라 ‘정치적’ 사안으로 보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보수 성향의 한 군사전문가는 “전시작전권 환수는 반미 자주 성향이 강한 메시지다. 제2의 반미 자주 촛불 캠페인에 시동을 건 것이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진보성향의 한 교수는 “노 대통령의 말꼬리를 잡아 비판하는 것은 문제다. 전시작전권 문제는 협상이 진행 중인 만큼 얼마나 유리하게 협상을 끌고 가느냐가 초점이 돼야 한다”며 “노 대통령이 내년 대선을 앞두고 무슨 구상을 한다고 먹힐 상황이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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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