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단기 시장금리의 기준이 되는 콜금리(금융회사 간 초단기 자금거래 금리)가 0.25%포인트 올랐다.
한국은행은 10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를 열어 콜금리를 연 4.25%에서 4.5%로 인상하기로 했다. 콜금리 인상은 올해 6월 이후 2개월 만이며 한은이 콜금리를 본격적으로 올리기 시작한 지난해 10월 이후로는 5번째다.
○ 콜금리 왜 올렸나
한은은 금리 인상의 배경으로 수출과 민간소비가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올 2분기(4∼6월) 수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7.1% 증가한 데다 소비와 설비투자도 많이 늘었다는 것.
반면 고(高)유가는 물가 불안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어 콜금리 인상이 불가피했다는 게 한은의 분석이다.
이성태 한은 총재는 이날 금통위 회의 직후 “금리를 높여 물가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 이자생활자 소득은 늘 듯
상당수 전문가들은 이번 금리 인상에 부정적이다. 각종 경제지표에서 경기가 하락하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데다 소비심리도 위축됐기 때문.
올해 2분기 국내총생산(GDP)은 1분기에 비해 0.8% 증가하는 데 그쳐 최근 5분기 만에 가장 낮은 증가율을 보였다. 7월 소비자 기대지수는 6개월 연속 하락했다.
명지대 조동근(경제학) 교수는 “경기가 나빠질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물가만 잡겠다는 생각으로 금리를 올리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가계도 상당한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변동금리 조건으로 대출받은 사람들은 부담이 커진다. 콜금리 인상에 따라 주택담보대출 금리 등의 기준이 되는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가 당장 오를 것이기 때문.
실제로 이날 채권시장에서 CD 금리는 전날보다 0.07%포인트 오른 연 4.71%로 마감돼 2003년 3월 28일(4.73%) 이후 3년 5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 됐다.
만약 CD 금리와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연쇄적으로 콜금리 인상분(0.25%포인트)만큼 오른다면 1억 원의 담보대출을 받은 사람은 연간 25만 원의 이자를 추가로 내야 한다.
최근 주택금융공사의 보금자리론(옛 모기지론) 등 고정금리 대출이 늘어나고 있지만 주택담보대출은 거의 대부분이 변동금리 대출이다. 따라서 콜금리 인상은 부동산 시장, 나아가 건설경기에도 악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그러나 예금자는 유리해진다. 국민 우리 신한 기업 외환은행 등 대부분의 시중은행은 14일부터 예금금리를 0.1∼0.3%포인트 올리기로 했다. 이때부터 예·적금에 새로 가입하면 더 많은 이자를 받을 수 있는 것.
그렇다고 고금리 예·적금에 들기 위해 이미 가입한 상품을 깨면 중도해지 수수료를 물어야 하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
금융당국이 금리정책으로 경기를 조정할 수 있는 여력이 생겼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한국금융연구원 하준경 연구위원은 “2001년 이후 저금리가 지속돼 금리가 정책수단의 기능을 다하지 못했는데 최근 잇단 콜금리 인상으로 기능을 회복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 “금리 4.5% 현 상황에 맞아”
이 총재는 이날 “지난해 10월 이후 콜금리를 1.25%포인트나 올려 경기 등 여러 변수를 관찰하면서 통화정책을 유연하게 가져갈 수 있게 됐다”며 “금리 4.5%는 현 경제 상황에 대체로 맞는 수준”이라고 했다.
그는 또 “통화정책은 상당 기간 방향성을 가져야 하는데 최근 경제 움직임이 그런 방향성에 대해서 재검토를 할 수 있는 여건으로 전개되는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이 총재의 이런 발언은 직설적인 표현은 아니지만 당분간 금리를 추가 인상하지 않을 것이란 점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금융연구원 신용상 거시경제팀장은 “경기 전망이 부정적이어서 공격적으로 금리를 올리기 힘든 상황”이라며 “연말까지는 금리를 동결하거나 한 차례 정도 더 올리는 데 그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송진흡 기자 jinhup@donga.com
김상수 기자 ssoo@donga.com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李고집…재경부 반대 무릅쓰고 인상 강행▼
이성태(사진) 한국은행 총재가 10일 ‘깜짝 쇼’를 연출했다. 정부와 여당은 물론 시장의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리며 콜금리 인상을 주도한 것.
사실 한은 주변에서는 콜금리를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의가 끝나기 직전까지 동결을 예상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경기 하강세 등을 감안해 ‘콜금리 인상 불가’ 압력이 높았던 데다 전날 미국도 연방기금 금리를 동결했기 때문.
하지만 이 총재는 이런 안팎의 압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물가 안정’이라는 자신의 소신을 지켰다. 그는 현재 시중에 과도하게 풀려 있는 과잉 유동성(돈)을 잡지 않으면 나중에 국민 경제 전체가 심각한 후유증을 앓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한은 안팎에서는 이 총재가 이렇게 ‘세게’ 나올 수 있는 배경으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면 좀처럼 흔들리지 않고 밀어붙이는 ‘원칙론자적 성격’을 들고 있다.
이번 콜금리 인상이 중앙은행 독립성 강화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은 간부들은 여당과 정부 쪽에서 나오는 콜금리 동결 주장에 대해 중앙은행의 고유 권한을 침해하는 발언이라며 상당히 불쾌해했고 이 총재로서도 이런 한은 내부 분위기를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여기에는 정부나 정치권에 대해 ‘한은이 죽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 주려는 ‘조직 보호본능’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는 관측도 있다.
송진흡 기자 jinh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