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음악]데뷔 15주년 ‘故이즈미…’ 콘서트 여는 김장훈

입력 | 2006-07-05 03:03:00

원대연 기자


당사자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15년 간 그는 'B급 가수'에 충실했다. 100만장 이상의 음반 판매 기록도, 아이돌 가수들처럼 팬들을 벌떼같이 모은 일도 없다. 여기에 그 특유의 'B급 행동'은 그를 'A급 가수'와 철저히 차별화했다. 2001년 초 6집 타이틀곡 '혼잣말'로 생애 처음 가요 프로그램에서 1위를 하던 날 그는 수상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얘들아, 앵콜곡 좀 듣고 가"

함께 1위 후보에 올랐다가 떨어진 'SES'의 팬들이 우르르 자리를 뜨자 민망한 감정을 숨김없이 얘기한 것. 확실히 'B급 멘트'를 날렸지만 왠지 그, 가수 김장훈(39)은 밉지 않다.

● B급 가수의 15년 공연

"데뷔 15주년이요? 아휴 저 숫자 놀이 접은 지 꽤 됐어요. 15주년 기념 콘서트 같은 걸 왜 해요? 전 그냥 오늘 이 무대에 충실할 뿐이에요…"


2002년 겨울 잠실공연 실황중에서

1991년 데뷔 앨범을 발표했으니 올해로 16년째. 어느덧 가요계 '고참'이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의 발자취에 시큰둥하다. 올해 초 10개 도시 전국 투어를 마치자마자 7일부터 대학로 소극장 공연 '김장훈 아니면 못할 공연' 준비에 한창이다. 하반기에는 전국 10개 도시 체육관 투어도 잡혀있단다. 3일 밤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의 한 스튜디오에서 만난 그는 늘 그렇듯 공연 얘기뿐이었다.

"그래도 저 철 많이 든 거에요. 1991년 데뷔 앨범 냈을 때 '고(故) 김현식 사촌동생'이라는 이상한 꼬리표가 붙었고 제가 마치 그걸 이용하는 것 같아서 방송 펑크 내고 도망쳤죠. 7년 간 방송 출연 정지당하고 공연장에는 2명 앉혀놓고 공연하고… 까마득했죠."

'마음에 안 맞으면 때려치웠다'는 그가 유독 집착한 것은 바로 공연. "나의 내장까지도 꺼내 보여줄 수 있다"는 표현을 써가며 그는 15년 동안 1500회 이상 공연을 해왔다. '국군장병을 위한 콘서트'(1999), '군사부일체'(1999), '살수대첩'(2004) 등 공연 제목부터 범상치 않다. 이번 소극장 공연 역시 일본 총리인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에 대한 노골적인 반감을 담아 '고(故) 이즈미를 생각해본다', '고이자미 드소서' 등의 도발적인 부제를 붙였다.

"전 무대쟁이지만 스스로를 민족주의자라고 생각해요. '동북공정'이나 최근의 독도 문제, 반일감정 등에 늘 관심을 가져요. 제가 이런 거 한다고 우리나라 국방력이 증대되는 건 아니지만 저의 몸짓으로 조금이라도 '애국' 분위기가 형성됐으면 하는 것뿐이죠."

● B급 가수의 15년 음악, 그리고 A급 선행

1991년 '그 곳에'로 데뷔했지만 정작 그가 유명해진 건 7년이 지난 1998년 발표한 '나와 같다면' 부터. '슬픈 선물', '난 남자다', '혼잣말' 등을 히트시키며 인기를 얻었지만 최고의 스타였던 적은 없었다. 그러나 그는 "뭐든 최정상보다 바로 아래에 있는 게 좋다."고 말한다.

"노래하는 사람은 벼랑 끝에 있는 것이 유리해요. 절박한 삶에서 노래를 불러야 내 노래를 듣는 사람들에게 구원을 줄 수 있죠. 만약 제가 결혼해서 단란한 가정을 꾸린다면 '나와 같다면' 같은 노래는 못 부를 것 같아요."

그는 얼마 전 가출 청소년들을 위해 사비 1억원을 털어 가출청소년 쉼터 버스인 '꾸미루미'를 만들었다. 이미 1998년부터 경기도 부천시의 '새소망의 집'을 후원하고 있으며 경기 고양시에 청소년을 위한 쉼터도 마련했다. 고교 시절 퇴학을 당하고 집을 뛰쳐나와 '벼랑 끝' 경험을 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도와줄 돈이 없으면 은행에서 대출을 받거나 집과 차를 팔기도 한다니 무모해 보이지만 그는 당연한 일이란다.

"그동안 제가 살아온 삶이 너무 치열해서 오히려 '쿨'해진 것 같아요. 딴따라가 돈 없으면 늙고 추하다지만 난 가수 관둬도 열심히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앞으로 15년 후 모습을 묻자 "일단 9월에 나올 9집이 힙합 아티스트들과 함께하는 획기적인 음반이 될 것"이라며 9집 홍보를 늘어놓았다. 그러다가도 "앞으로는 가수 활동은 안 할 것 같다"는 뜬금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나 재미난 부연설명이 이어졌다. "애 앞에 놓고 기타치거나 밥 먹다 말고 노래하는… 따로 무대 없어도 노래해서 즐거우면 되는 거 아녀요?"라는 대답을 한 후 그는 밴드 연습실로 유유히 사라졌다. 30주년이 돼도 그는 여전히 B급 가수일 듯 하다.

김범석기자 bsis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