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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 김영남씨 가족 28일 상봉

입력 | 2006-06-27 17:53:00


"그동안 내 속을 까맣게 태웠지만 살아서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효자지. 지금까지 잘 살아줘서 고마운 내 새끼를 마음껏 보듬어 주고 싶어."

27일 오전 전북 전주시 호성동 자택에서 납북자인 아들 김영남(45) 씨를 만나러 나서는 어머니 최계월(82) 씨는 긴장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최 씨는 딸 영자(48) 씨와 함께 이날 오후 강원 속초시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 28일 금강산에서 열리는 제14차 이산가족 상봉행사에서 아들을 만날 예정이다.

아들이 선배들과 함께 해수욕장에 다녀오겠다며 집을 나선지 28년. 최 씨는 혹시라도 아들이 늙어버린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까봐 고운 분홍색과 보라색 한복까지 준비했지만 여전히 걱정이 앞선다.

그는 "영남이를 보면 그동안 살아 있어 준 것이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면서도 "고등학교 다닐 때 건장한 모습만 기억 속에 남아있는데 영남이 얼굴을 보면 말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며 안절부절이었다.

최 씨는 늦둥이 막내아들을 만난다는 설렘에 며칠째 수면제를 먹어도 밤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두통과 관절염에 시달려 부축 없이는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하는 최 씨의 가방에는 약이 몇 봉지나 담겨 있었다.

그는 딸 영자 씨 결혼식에 멋진 양복을 차려입은 남편의 사진도 챙겨 넣었다. 이미 저 세상 사람이 된 아버지의 모습을 아들에게 사진으로나마 보여주고 싶어서다. 최 씨는 아들을 그리다 1985년 숨을 거둔 남편과 함께 아들을 만나지 못하는 것이 한이 된 듯 연신 눈물을 훔쳤다.

하지만 북에 있는 아들과 며느리, 손자, 손녀에서 주기위해 며칠동안 준비한 선물보따리를 볼 때마다 최 씨의 표정은 밝아졌다.

항상 손에 차고 다니며 남녘의 가족들을 생각하라는 뜻에서 시계를 샀고 아들이 평소 즐긴다는 담배와 혹시 건강을 잃지는 않았을까하는 걱정에 상비약과 영양제도 준비했다. 아들과 함께 올 손녀 혜경(19) 씨를 위해선 분홍색 셔츠와 화장품, 머리핀을 마련했고 며느리와 손자를 위한 시계와 학용품도 포장지에 곱게 쌌다.

최 씨는 "어렸을 때 아들이 입었던 흰 내복도 준비했고 아들이 좋아하던 약밥도 준비했다"면서 "줄 수 있는 건 다 주고 싶다"고 말했다.

딸 영자 씨는 "남동생 생각에 가슴이 새까맣게 타버린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아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라고 말했다.

납북자가족모임 최성용(53) 대표는 "김 씨 가족의 상봉은 북한이 처음으로 납북자의 실체를 인정했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획을 긋는 사건"이라며 "이번 상봉을 계기로 하루 빨리 납북자 가족 전체가 상봉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주.속초=문병기 기자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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