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헤란을 기점으로 카스피 해에서 걸프 만까지 한반도의 7.5배나 되는 국토를 종단하는 동안 이란은 ‘여러 개의 얼굴을 가진 나라’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시내로 접어들어 ‘서울로’로 이름 지어진 중심도로를 지나는데 곳곳에 늘어선 LG전자와 삼성전자의 광고 입간판들이 눈에 들어온다. 1970년대 중반 테헤란 시와 서울시가 도로명 교환협정을 체결한 이후 ‘서울의 테헤란로’와 ‘테헤란의 서울로’는 각기 두 나라 발전의 중심에 서 있다.》
테헤란에서 카스피 해에 이르는 길은 엘부르즈 산맥을 뱀처럼 휘감고 있었다. 운전에 통역까지 맡아 준 마지드 나시리 씨는 “카스피 해 지역은 이란의 부유층 별장지대이며 가장 자유롭고 풍요로운 곳”이라고 일러 준다.
이란이 보유한 에너지자원은 크게 북부의 카스피 해 연안과 남부 걸프 만의 사우스파스 가스전에 집중돼 있다. 그러나 두 곳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카스피 해 지역은 ‘돈이 굴러다닌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사회 인프라 건설이 한창이고, 거리에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반면 걸프 만에 건설 중인 아살루에 가스플랜트 단지 주변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국제공항은 문을 연 지 불과 2주밖에 안 된다.
아살루에 지역은 걸프 만의 사우스파스 해상가스를 정제하는 이란의 대표적인 석유화학단지. 심해 가스전을 놓고 카타르와 이란이 동시에 채굴해 가는 치열한 경쟁 양상을 보이고 있다. 카타르가 서방기업 중심의 개발이라면, 이란 쪽은 다양한 국가가 포진해 있다. 물론 미국과 영국 기업들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한국은 이란의 두 번째 교역상대국이다. 1위는 일본, 3위는 독일이다. 또한 이란은 한국이 수입하는 석유의 10%를 공급하는 3위의 공급국이다. 그러다 보니 대림산업, GS건설, 현대건설 등 많은 기업이 아살루에 지역의 사우스 파스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송근호 현대건설 부장은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취임 닷새 만에 아살루에 단지를 방문해 “공기(工期)를 4개월이나 앞당긴 것은 세계 신기록 감!”이라고 극찬했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렇다고 우리 기업들의 환경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이란 정부가 서방 기업들의 진출을 제한하고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인두세를 부과하는 한편 자국인 우선채용 방침을 강화하면서 인건비는 폭등하고 기술 인력은 빠져나가고 있다. 실제로 현대건설에 선수금까지 지급한 올레핀 11광구 공사는 중단 위기에 놓여 있다.
테헤란대 에너지연구소 파르항그 잘릴리 박사는 한국을 직접 언급하진 않았으나 “이란 내 자원개발권이 이란의 평화적 핵에너지 개발 주장에 동조하지 않는 국가에까지 할당될 가능성은 적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이란의 미래는 에너지 패권경쟁 구도의 결정적 분수령이 될 가능성이 높다. 기본적으로 이란과 이라크의 석유 및 가스 매장 잠재력은 알려진 것보다 훨씬 많다. 이란-이라크 전쟁과 걸프전, 오랜 경제 봉쇄로 고도의 탐사기술을 지닌 서방기업의 접근 자체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25년 이상 다른 지역에 비해 신규 탐사나 시추가 지연된 것이다. 이 말을 뒤집어 보면 향후 석유시장에서 이란과 이라크의 비중은 더 높아질 개연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두 나라가 시아파 이슬람이란 공동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미국으로선 큰 위협이다. 러시아는 다르다. 이슬람권인 중앙아시아를 자국의 세력권에 두기 위해 이란에 등을 돌리기 어렵다.
이란 핵개발 문제는 자원과 종교적 정체성, 지정학적 긴장 속에 난마(亂麻)처럼 얽혀 있다. 이처럼 복잡한 연계 구도는 이란-베네수엘라의 공동 전선으로 인해 남미까지 확장된다. 테헤란 바자(시장)에서 만난 상인들은 “어느 나라에 가장 친근감을 느끼느냐”는 질문에 의외로 “베네수엘라”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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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치는 오일머니… 러 초음속미사일 구입說▼
미국의 군사공격설에 시달리는 이란 정부는 최근 러시아로부터 세계 유일의 초음속 함대함 미사일 야혼트(사진)를 도입했다는 주장을 공공연히 흘리고 있다. 4세대 함대함 미사일 야혼트는 최신 레이더망을 피할 수 있도록 스텔스 기능을 보유한 3t 중량의 초음속 미사일로 중규모 구축함에서 항공모함까지 공격할 수 있다.
러시아는 야혼트 제공설을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란 군함이 야혼트를 탑재하고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경우 미국을 중심으로 한 다국적군 함대에는 엄청난 위협이 될 것이다. 야혼트가 아니더라도 이란에는 러시아산 신무기가 유입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
오일 머니와 무기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오늘날 자원 보유국들은 고유가 시세를 틈타 에너지 소비국들을 대상으로 ‘에너지 패권’ 외교를 전개하면서 동시에 지속 가능한 경제 발전을 위해 사회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전력하고 있다. 여기에 군사력 정비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음은 물론이다. 지상군과 공군만 보유해 온 카자흐스탄도 카스피 해 자원 개발에 맞춰 해군을 창설했다.
잠재적 방산 시장인 자원 부국들에 대한 서방국가의 발 빠른 움직임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아프가니스탄전쟁 이후 독일은 우즈베키스탄 군인들을, 프랑스는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 군인들을 자국에 데려와 훈련시키는 데 돈을 아끼지 않았다.
▽공동취재▽
△김재두 국방연구원 이라크 팀장
△심경욱 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이철희 동아일보 국제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