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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정평화재단 국제학술회의]“韓美, 서로 길막고 있다 여겨”

입력 | 2006-05-16 03:03:00

13일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 영빈관에서 동아일보사 부설 화정평화재단·평화연구소와 한국국제정치학회 공동주최로 열린 국제학술회의에서 참석자들이 토론을 벌이고 있다. 왼쪽부터 피터 벡 국제위기감시기구 동북아사무소장, 티띠난 뽕숫히락 태국 쭐랄롱꼰대 교수, 안드레이 치간코프 미국 샌프란시스코 주립대 교수, 사회자인 양성철 고려대 석좌교수, 소에야 요시히데 일본 게이오대 교수, 남창희 인하대 교수. 박영대 기자


《동아일보사 부설 화정(化汀)평화재단·평화연구소는 창립 50주년을 맞은 한국국제정치학회와 공동으로 12, 13일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 영빈관에서 ‘세계 속의 동아시아와 미래 한국’을 주제로 국제학술회의를 열었다. 학술회의에서 한국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프랑스 호주 태국 싱가포르 등 9개국의 전문가 40여 명은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다양한 협력방안을 제시하면서 동아시아 공동체의 가능성을 점검했다. 》

▼6자회담 전망과 동북아 안보환경▼

“北核문제 경제지원과 연계해 풀어야”

학술회의에서는 교착 상태에 놓인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의 장래를 비관하는 전망이 많이 나왔다. 또 동북아지역 내 국가 간의 긴장 고조로 이 지역 전체의 안보관리에 문제가 생기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한용섭(韓庸燮) 국방대 교수는 “6자회담이 지속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주 원인은 미국이 지난해 9월 6자회담에서 합의한 공동성명과 거리가 있는 정책을 펴면서 한국이 이 정책으로부터 이탈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한 교수는 “북한을 상대로 금융제재를 하며 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책임을 이행하라는 것”이라며 “그 연장선상에서 미국은 6자회담이 아닌 폭정(暴政)을 없애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반면 한국은 남북교류 활성화를 통해 6자회담을 재개하길 원하며 6자회담이 실패해도 남북관계를 유지하길 바란다”며 “바로 이 부분이 한미 양국 간의 분쟁지점”이라고 말했다.

길버트 로즈먼 미 프린스턴대 교수는 “6자회담의 미국 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의 영향력이 매우 약화됐다. 고립됐다고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 교수와 패트릭 모건 미 어바인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6자회담의 진척을 위한 해법을 ‘회담의 제도화’에서 찾을 것을 주문했다. 한 교수는 “북한에 6자회담 참석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선 경제적 인센티브 제공과 핵문제와 관련한 북한의 의무 이행을 연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페이링 왕 미 조지아공대 교수는 ‘6자회담 무용론’까지 들고 나왔다. 그는 “특히 보수주의자들은 이미 6자회담이 실패했고 중국은 그 때문에 손해를 보았다고 한다”며 “핵문제가 실질적으로 해결이 안 되면 중국이 왜 6자회담에 계속 참여해야 하는지에 대해 한국이 답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모건 교수는 한미, 한일, 중-일, 북-미관계의 악화가 동북아지역 안보에 문제를 초래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그는 “한일 간엔 공개적으로 적개심을 표출하고 있으며 한미는 한반도 긴장완화 정책 등을 둘러싸고 상대편이 ‘길을 막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중-일은 서로를 위협적인 존재로 보고 있으며, 미중은 양국의 분쟁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어 동북아 지역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동북아 공동체 형성 왜 어려운가▼

“리더십 부재 3國 3色… 경제협력도 없어”

“미국은 1997년 아시아가 금융위기에 처했을 때 신속하고 충분히 돕지 않았다. 일본이 아시아통화기금을 설립하는 데 반대한 것도 동아시아의 지역적 경제협력을 자극했다.”

아미타브 아차리아 싱가포르 난양공대 교수는 미국에 대한 ‘분노’가 동아시아 지역 내 단결심을 고취시켜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등 동아시아 공동체가 결속하는 밑바탕이 됐다고 주장했다. 공동체 형성이 심리적 충동에 의해 촉발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

문정인(文正仁·연세대 교수) 국제안보대사는 동북아지역의 공동체 형성이 이뤄지지 않는 것은 한중일 3국이 경제공동체에 대해 서로 다른 비전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중국은 홍콩 마카오 대만을 포괄하는 동남아지역 중심의 ‘중국 경제공동체’를 추진 중이며, 일본 역시 동남아와의 경제협력을 최우선시하고 있다는 것.

반면 한국은 남북한 협력을 통한 ‘한민족 공동체’를 기반으로 동북아와 동아시아로 나가려는 계획을 갖고 있어 한중일 3국이 서로에 대한 경제적 협력을 추진하고 있지 않다는 게 문 대사의 설명이다.

이신화(李信和) 고려대 교수는 동아시아 공동체 형성을 위한 리더십 부재(不在)를 지적하며 “중국과 일본의 지도적 역할에 동의하는 국가가 없으며 한국은 지정학적인 문제 때문에 주도력을 갖기 힘들다”고 말했다.

정몽준(鄭夢準·무소속) 의원은 학술회의 오찬 연설을 통해 “현대 문명의 의제는 다른 문명 간 상호의존(interdependence)의 관리가 될 것”이라며 “국가 간 협력과 협의가 생존과 번영에 필수불가결한 세상이 됐다”고 진단했다.

▼동북아 협력시대를 위한 한중일 역할은▼

“中, 책임회피 말고 日은 대미의존 줄여야”

동북아시아에서의 안보 협력을 위해 한국 중국 일본이 각각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다양한 견해가 쏟아졌다.

팡중잉 중국 난카이(南開)대 교수는 “중국의 외교정책 지침은 ‘숨어서 시간을 벌라’는 것”이라며 “이 때문에 중국은 국제적 갈등에 휘말리지 않고 국내 정치가 안정되기는 했지만 국제사회 리더로서의 역할을 회피한다는 지적을 받게 됐다”고 말했다.

소에야 요시히데(添谷芳秀) 일본 게이오(慶應)대 교수는 “일본이 침략국으로서 잘못된 정책을 주도하고 있다는 시각이 있지만 일본의 반전(反戰)주의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일본의 역할이 간과되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러나 티띠난 뽕숫히락 태국 쭐랄롱꼰대 교수는 “일본이 동아시아 공동체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려면 미국에 덜 의존적이 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글렌 페이지 미 하와이대 교수는 “한국은 역내에서 리더십을 발휘할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고, 이영조(李榮祚) 경희대 교수는 “평화로운 동북아를 만드는 데 한국은 도덕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남창희(南昌熙) 인하대 교수는 “동북아에서 다자간 안보협정을 만드는 게 어떠냐”면서 “우선 한미일 3자간 신뢰를 구축한 다음 중국 등 다른 참가국을 도모하는 것이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제안했다.

▼날선 독도 신경전▼

문정인 대사 “독도 분쟁 긴장 고조…항상 일본이 발단”

소에야 교수 “한국 역사문제 집착 협상여지 없애”

이날 학술회의에서 한국과 일본 학자들은 독도 문제에서 날선 신경전을 벌였다.

문정인 국제안보대사는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과 신사참배, 독도 분쟁 등으로 인해 한일 간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며 “항상 문제의 발단은 일본”이라고 포문을 열었다.

그러나 소에야 요시히데 일본 게이오대 교수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독도 문제를 역사 문제라고 했지만 일본에선 주권과 영토 문제로 보고 있다”며 “역사 문제라고 해버리면 더는 외교적인 협상의 여지가 없어진다”고 맞섰다.

그는 “동아시아 지역의 공동체 구상은 결국 한국과 일본의 역할에 달렸는데 역사에 집착하면 모든 것을 잃고 그것만 포기하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자 사회를 보던 양성철(梁性喆) 고려대 석좌교수는 “소에야 교수가 독도 문제에 대해 한국은 역사 차원의 입장이라고 했는데 나는 그런 의견에 반대한다”며 “한국은 독도를 영토의 문제로도 보고 있다”고 반박했다.

피터 벡 국제위기감시기구(ICG) 동북아사무소장도 “동북아에서 주변의 많은 국가와 영토 문제를 빚고 있는 유일한 나라는 일본”이라며 “독일과 비교하면 일본이 과거사를 망각하고 있다는 데 대해 주변국뿐만 아니라 서구 사람들도 동의하고 있다”고 거들었다.

정리=윤종구 기자 jkmas@donga.com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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