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영등포구 '교통부 장관' 91세 할아버지 장가가던 날

입력 | 2006-05-08 17:24:00


"할머니에게 너무 빠지셔서 교통정리 봉사를 게을리 하시면 안 됩니다."

정철수(丁喆秀·43) 서울 영등포경찰서장의 주례사에 하객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백발의 신랑 신부도 수줍은 듯 얼굴을 붉혔다.

서울 영등포역 앞에서 27년간 매일 아침 교통정리를 해 '영등포구 교통부 장관'으로 불리는 임진국(91) 할아버지가 어버이날인 8일 오전 차갑선(75) 할머니와 영등포 역전파출소에서 백년가약을 맺었다. ▶본보 4일자 A13면 참조

망백(望百)의 나이에 초혼인 임 할아버지는 결혼식이 시작되기 전 시계를 들여다보며 "왜 시간이 이렇게 가지 않느냐"며 안절부절했다.

역전파출소 옆 0.5평 크기의 창고에 마련된 신부대기실에 많은 취재진이 몰리자 임 할아버지는 "신부 사진을 너무 많이 찍지 말라"며 창고의 문을 닫는 '심술'을 부리기도 했다.

경찰 정복을 차려 입은 신랑과 순백의 웨딩드레스로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 5월의 신부가 식장인 파출소 안으로 들어서자 우레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들을 중매한 역전파출소 김덕기(51) 경사 부부가 신랑 신부를 단상까지 모셨다.

하객은 임 할아버지가 다니는 영등포 구세군 교회 신도와 영등포 상가번영회 회원 등 40여 명. 이택순(李宅淳) 경찰청장도 결혼식에 참석해 임 할아버지 부부에게 TV를 선물했다.

이날 오전 7시에도 어김없이 교통정리 봉사를 하고 온 임 할아버지는 결혼식 내내 쑥스러운 듯 어색한 웃음을 짓더니 신부의 매력을 묻는 질문에 "모든 게 다 매력적이다"며 신부 사랑을 숨기지 않았다.

차 할머니는 "더 이상 무슨 바람이 있겠느냐"며 "그저 건강하게, 알콩달콩 재미있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경사는 "대학원에 다니는 큰 딸이 결혼할 때보다 기분이 더 좋다"며 "닷새 전부터 두 분이 함께 지내시는데 매일 그저 웃기만 하신다"고 말했다.

식을 마친 임 할아버지 부부는 웨딩카로 변신한 순찰차를 타고 영등포역으로 향했다. 이 곳에서 김 경사의 차로 갈아탄 부부는 경기 용인시 한국민속촌을 구경한 뒤 영등포동에 새로 마련한 6평 남짓한 신혼방에서 공식 첫날밤을 보냈다.

임 할아버지 부부에게 어버이날은 결혼기념일이자 이웃의 사랑을 느낀 날로 기억될 듯하다.

이재명기자 egija@donga.com

트랜드뉴스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