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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적십자사, 에이즈·간염 검사 시스템 무허가 도입

입력 | 2006-04-21 08:17:00


대한적십자사가 수 십억원의 정부 예산을 받아 구입한 AIDS(후천성면역결핍증), C형간염 바이러스 검사 시스템 3대 중 2대가 의료용구 수입품목 허가를 받지 않은 제품으로 드러났다.

21일 동아닷컴이 입수한 2003년도 적십자사 핵산증폭검사(NAT) 장비도입 관련 자료에 따르면 적십자사는 업체선정 참가자격에서 “외국에서 제조된 경우 FDA(미국 식품의약품안전국) 또는 CE(유럽공동체안전마크)를 획득한 제품”이라고 명시하고서도 2대의 검사 시스템은 시스템을 구성하는 각 장비에 대해서만 허가나 인증을 받았을 뿐, 전체 장비(시스템)에 대해서는 일괄 의료용구 허가를 받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식약청은 이들 시스템에 포함된 일부 장비에 대해 “의료용구에 해당되지 않는다”면서 “다만, 이 제품을 구성품으로 하는 의료용구일 경우에는 의료용구 수입품목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밝혔으나 적십자사는 전체 시스템에 대한 일괄 허가를 받지 않은 채 이 장비들을 조립해 사용했다. 이 장비들은 각각 다른 일을 하는 것들로 하나의 검사시스템으로 통합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우리 정부나 FDA의 검증 절차를 거쳐야 한다.

적십자사는 기존 효소면역검사(EIA)로 잠복기의 AIDS, B형, C형간염 바이러스를 검출하지 못해 수혈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자 2003년 10월 NAT 검사 시스템 3대를 도입키로 결정했다. NAT 검사 시스템은 바이러스 유전자의 핵산을 증폭함으로써 잠복기의 바이러스도 검출해 내는 최신장비로 연간 운영비만 200억 원 가까이 들어가는 초고가의 검사 장비이다. 적십자사는 3대 중 2대는 R사의 시스템을, 1대는 C사의 시스템을 총 38억원(부대비용 포함)에 구입했다. 문제가 된 시스템은 바로 R사의 제품.

이 시스템은 검사의 정확성 문제로 당시 일부 전문가들로부터 지적을 받기도 했다. 2003년 당시 NAT 시스템 도입을 위해 구성된 ‘NAT 사업 심의위원회’의 2차 심의위원회 회의록에 따르면 당시 적십자사는 두 시스템의 성능을 비교하기 위해 AIDS, C형간염 바이러스 등이 포함된 87개의 검체를 가지고 시험 검사를 한 결과, C사의 검사 시스템이 AIDS 바이러스 양성으로 판단한 검체를 R사 장비는 음성으로 판단한 사실을 1건 발견했다.

비록 1건이 차이가 났지만 이 검사 결과는 도입된 시스템이 한 해 100만 건 이상의 검체를 처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대목이다. 당시 심의위원회에 참석했던 적십자사의 한 관계자는 회의록에서 "검체 수가 적은 것을 감안할 경우 무시할 수 없는 자료"라며 "민감도(양성을 양성으로 가릴 수 있는 능력) 비교에서도 C사 장비가 더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또 "외국의 경우 50만 건 이상의 대량 검체를 처리하는 곳은 주로 C사의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적십자사 내부에서도 검사의 정확성에 의문을 표한 것이다.

실제 양쪽 회사 검사 시스템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엇비슷하다. 하지만 R사의 검사 시스템은 연간 처리 검체 수량이 50만 건 미만인 나라에서 널리 쓰이고, 국내처럼 100만 건 이상되는 나라는 대개 C사의 시스템이 이용되고 있다. 더구나 똑같은 수량에 대한 검사시간 마저도 C사 시스템보다 R사 시스템이 4배 이상 더 걸리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적십자사는 50만 건 미만 검체의 검사에 적합한 R사 시스템을 100만 건 이상 검사가 가능한 검사 시스템으로 만들기 위해 시스템을 구성하는 각각의 장비를 따로 도입한 후 정부의 검증을 받지 않은 채 조립해 사용해 온 것이다.

적십자사는 이에 대해 “R사의 검사 시스템에 들어가는 3개 장비는 모두 FDA나 CE의 허가나 인정을 받았으며 검사의 정확성은 1년을 사용했지만 문제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검사 시스템 전체에 대해 허가를 받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해명을 하지 못했다.

추후 헌혈혈액에 대한 B형 간염 바이러스 검사에 착수할 계획인 적십자사는 또 한번 국민의 혈세를 낭비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R사의 검사 시스템의 경우 앞으로 B형 간염 검사항목을 추가하려면 모든 시스템을 새로 도입해야 하는 반면, C사의 시스템은 해당 장비만 추가하면 되기 때문이다.

한편, 올 4월 현재까지 잠복기의 바이러스를 제대로 검출하지 못해 수혈사고가 일어난 사례는 에이즈가 16건, C형 간염이 5건, B형 간염이 4건, B형 간염 변종 바이러스 4건 등이다.

최영철 신동아 기자 ftdo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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