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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닥기업, 매출 뻥튀기-편법 증자로 겨우 연명

입력 | 2006-04-21 03:02:00


지난해 8월 코스닥 등록기업 A사는 자본잠식률이 50%를 넘어 관리종목으로 지정됐고 등록 폐지될 위기에 몰렸다.

그러나 이 회사는 곧 사상 최고 주가보다 3배나 높은 가격에 유상증자를 실시해 자본금을 보충했다. 이 돈은 모두 최대주주가 댔다.

A사는 상식과 동떨어진 이런 방법으로 자본잠식 기준을 극적으로 충족했다. 그 덕에 주가가 갑절로 올랐고 증시 퇴출도 면했다.

그런데 이 회사는 지난달 다시 자본잠식으로 퇴출 위기에 몰렸다. 주가는 어느덧 지난해 퇴출 위기 직전 수준까지 폭락했다.

A사는 이번에도 같은 방법을 사용했다. 감자(減資)로 자본금을 줄인 뒤 다시 증자를 실시해 아슬아슬하게 자본잠식을 면했다. 회사는 다시 소생했고 현재 코스닥시장에서 거래되고 있다. 7개월 동안 2차례나 퇴출 위기에 몰렸지만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살아남은 것.

개인투자자들이 주로 거래하는 코스닥시장에서 자격 미달 기업들이 이런 편법으로 거래를 유지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시장 곳곳에 언제 숨이 끊길지 모르는 ‘시한폭탄’들이 널려 있는 셈이다.

○ 부실기업은 즉시 퇴출시켜야

“지금 코스닥시장에서 누구나 주식을 사고팔 정도로 건강한 기업이 몇 개나 됩니까. 기업 가치를 산정하는 게 불가능한 업체가 수두룩합니다. 코스닥은 세계 어떤 증시와 비교해도 ‘정크 마켓(쓰레기 시장)’이라는 오명을 씻기 어려워요.”

증권사 한 관계자의 푸념이다.

기업이 주식을 증시에 상장하면 불특정 다수가 주식을 거래하게 된다. 주식 거래가 자유롭고 편해지기 때문에 주가도 제 가격을 받을 수 있고 회사 이름도 널리 알려지는 등 상장기업은 다양한 혜택을 누리게 된다.

이 때문에 아무 기업이나 증시에 상장할 수 없다. 자격을 갖추고 엄격한 심사를 거친 기업만 증시에 상장된다. 상장 심사는 기업이 과연 이만한 혜택을 누릴 자격이 있는지를 심사하는 것이고 이를 통과한 기업은 그에 걸맞은 실적과 도덕성, 자질을 유지해야 한다.

코스닥시장처럼 벤처기업을 위한 시장은 특히 건전성이 중요하다. 부실기업은 즉각 퇴출시켜야 투자자들이 안심하고 거래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자격 미달 기업들이 제도의 허점을 교묘히 이용해 시장에서 퇴출되지 않고 있다. 증권선물거래소는 ‘퇴출 기준을 대폭 강화했다’고 밝혔지만 허점이 있다는 뜻이다.

막판 실적 부풀리기나 증자 또는 감자 등의 편법에다 최근에는 ‘우회 상장’이라는 신종 수법까지 가세했다. 등록 심사를 통과하지 않은 장외 기업이 망하기 일보 직전인 등록 기업을 인수하는 이른바 ‘뒷문 상장’ 방식으로 코스닥에 등록한다.

이 때문에 정작 퇴출돼야 할 기업은 살아 있고, 등록 심사조차 거치지 않은 또 다른 ‘시한폭탄’이 증시에 등장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 ‘묻지마 투자’도 문제

대부분 코스닥기업들은 증시 등록 직전에 최고의 실적을 보인다. 정작 등록한 뒤 수많은 개인투자자가 투자에 나서면 실적이 나빠지는 기업이 적지 않다.

투자자들은 새로 등록하는 기업이 ‘젊은’ 기업답게 계속 성장하기를 기대하지만 상당수는 기업 공개로 얻는 투자금만 챙기고 바로 사양길로 접어든다.

대우증권 신동민(申東旼) 연구원은 “선진국에선 기업이 성장 초기 증시에 상장해 성장의 열매를 투자자와 나눠 갖는 일이 많지만 코스닥에서는 거의 성장이 끝난 기업이 등록하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투자자들에게도 책임은 있다.

부실기업은 투자자들이 외면하면 발붙일 곳이 없어진다. 실제로 외국인과 기관투자가는 몇몇 대형 우량주를 빼면 코스닥시장을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러나 개인투자자들은 코스닥시장에 열광한다. 기업 실적에 아무런 변화가 없는데도 퇴출 직전 유명 배우가 인수했다는 이유만으로 기업 가치가 수천억 원이나 뛰는 현상은 투기심리로밖에 설명되지 않는다.

이런 현상이 반복되니 기업은 편법을 써서라도 코스닥시장에서 살아남으려 하고, 투자자들은 이런 기업을 대상으로 다시 투기판을 벌이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이완배 기자 roryrery@donga.com



■“뒷문상장 기업 집중감시”

코스닥시장의 혼탁이 도를 넘어서면서 감독당국도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금융감독위원회는 최근 기승을 부리는 우회상장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기로 했다.

등록 심사를 거치지 않은 기업들이 부실 코스닥 기업을 인수하는 방법으로 증시에 등장하는 사례가 늘면서 투기 바람이 불고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

최근 배용준 장동건 씨 등 유명 연예인 소속사들이 코스닥에 우회상장한 것을 비롯해 닭고기 가공회사 신명, 여행업체인 인터컨티넨탈여행사 등이 우회상장으로 코스닥에 모습을 드러냈다.

금감위는 이런 우회상장 기업들에 공시 의무를 강화하고 비상장기업의 주식가치를 평가할 때 최소 2곳 이상에서 평가를 받도록 하는 등 보완책을 마련하고 있다.

늦어도 다음 달까지는 법률 개정 문제를 매듭지은 뒤 보완책을 시행할 계획이다.

증권선물거래소도 부실기업을 더 쉽게 퇴출시키는 쪽으로 제도를 보완하기로 했다.

우선 최소 매출 기준을 통과하기 위해 연말에 의도적으로 매출을 부풀리는 기업에 대해서는 분식 여부를 철저히 조사할 방침이다.

증권선물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 이규성(李圭聖) 이사는 “코스닥 퇴출 규정이 강하긴 하지만 그래도 편법으로 살아남는 기업이 있는 게 현실”이라며 “이른 시간 안에 제도를 보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주가수익비율 거래소의 9배

흔히 한국 증시는 가치에 비해 저평가됐다는 뜻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코스닥시장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다.

주가가 고평가됐느냐 저평가됐느냐를 따지는 주가수익비율(PER)을 보면 확연히 나타난다.

PER는 기업의 수익에 비해 주가가 어느 정도 수준이냐를 따지는 것인데 거래소 상장기업은 평균 10.4배 정도 된다. 반면 일본은 29.49배, 미국은 19.05배다. 한국 기업이 똑같은 이익을 내더라도 주가는 미국의 절반, 일본의 3분의 1 수준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코스닥시장의 PER는 무려 94.40배다. 같은 이익을 내고도 주가는 미국의 5배, 일본의 3배를 넘는다. 벌어들이는 돈은 없는데 주가만 높은 셈이다.

코스닥 기업의 고평가 현상은 역사가 길다.

2000년 2월 코스닥 거품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새롬기술의 PER는 1384배였다. 국내 최고 기업인 삼성전자의 PER가 당시 14배 수준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새롬기술 주가는 삼성전자보다 100배가량 높게 형성됐던 것.

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당시 새롬기술은 한 해 수익이 41억 원이었지만 시가총액은 무려 5조1796억 원이나 됐다.

이완배 기자 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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