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를 보며 “하루라도 빨리 한국에 가서 김영남 씨 모친과 만나고 싶다”고 말하는 요코타 시게루와 사키에 씨 부부. 이들 앞 테이블에는 김 씨 어머니인 최계월 씨와 자신들의 사진이 나란히 실린 12일자 동아일보가 놓여 있다. 가와사키=서영아 특파원
《북한이 2002년 납북 일본인인 요코타 메구미의 남편으로 알려진 김철준(김영남)을 통해 메구미 부모의 방북을 초청했던 사실이 처음 밝혀졌다. 당시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첫 방북을 했을 때였다. 메구미의 부모인 요코타 시게루(橫田滋·73), 사키에(早紀江·70) 씨 부부는 16일 가나가와(神奈川) 현 가와사키(川崎) 시 자택에서 본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고이즈미 총리의 첫 방북 당시 ‘사위라는 사람(김철준)’이 친필 편지를 보내 메구미의 사망 사실을 전하며 우리 부부를 초청했다”고 밝혔다. 북한이 당시 메구미의 부모를 초청한 것은 메구미가 이미 사망했다는 것을 기정사실화해 일본 등 국제사회에서 이 문제를 둘러싼 논란을 잠재우기 위한 의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 부부는 이와 관련해 “초청 편지를 받고 고민했다. 그러나 우리가 방북해 ‘사위’라는 사람이 딸의 묘라고 말하면서 안내라도 하면 딸이 죽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딸이 죽었다는 것은 절대 믿을 수 없으니 그럴 수 없었다”고 말했다. 초청 편지의 내용은 대략 이러했다고 한다.
“‘메구미와 저는 ○○마을에서 처음 만나 결혼했고 곧 딸이 태어났습니다. 행복한 결혼 생활이었는데, 지금은 메구미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할 수밖에 없어 유감입니다. 딸 혜경이(18)가 아직 어려 일본에 가기는 어려우니 두 분이 북한에 와 주신다면 함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싶습니다’는 것이었습니다.”(사키에 씨)
이 부부가 방북하지 않은 데는 ‘김철준이 딸의 남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구심도 작용한 듯하다. 부부는 북한이 그동안 딸의 남편이라고 말해 온 김철준이 최근 일본 정부의 DNA 감정 결과 남편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밝혀진 납북 한국인 김영남(44) 씨와는 동일인물이 아닐 수 있다는 의구심을 여전히 갖고 있는 듯했다.
달리기 1등 메구미 초등학교 4학년 때 운동회에서 포즈를 잡은 요코타 메구미. 달리기에서는 항상 1등을 차지했다고. 사진 제공 요코타 시게루 씨 부부는 이날 오전 인터뷰 약속을 하며 당초 20분만 시간을 낼 수 있다고 했으나 두 시간 가까이 말을 끝내지 못했다.
이 부부는 당시 13세의 여중생 메구미가 귀갓길에 홀연히 모습을 감춘 1977년 11월 이후 자신들을 부르는 곳이면 어디든 뛰어가 “딸을 되찾을 수 있게 도와 달라”고 호소하고 다녀 일본 내에서는 납북 피해자의 상징처럼 돼 있다. 2002년 이후 월평균 10회 이상의 강연회에 참석했을 정도다.
한국에 사는 김영남 씨의 어머니가 “(메구미 부모와) 만나고 싶어 한다”는 말에 시게루 씨는 “우리는 인척인 셈이니 한시라도 빨리 만나고 싶다”며 “양가 자녀들의 어릴 적 얘기를 서로 나누며 위로하고 싶다”고 했다.
사키에 씨는 “메구미가 북한 사람과 결혼했으면 일본에 돌아오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걱정하고 있었다. 상대가 한국인이라니 조금 기분이 편해졌다”며 “손녀딸 혜경도 일본에 오기 쉬워진 셈”이라며 눈을 반짝이기도 했다.
쌍둥이 동생들과 가족여행에서 쌍둥이 동생들과 함께한 초등학교 4학년 무렵의 메구미. 발레 연습을 위해 까치발로 서는 버릇이 있었다. 사진 제공 요코타 시게루 씨 부부는 한국에 가게 되면 김철준의 편지를 김영남 씨의 어머니에게 보여주고 아들의 필체가 맞는지를 확인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르면 5월 초순에라도 가고 싶습니다. 이번에 미국 하원 청문회 증언을 위해 아내가 미국에 가는데 한국의 납북자가족모임 최성용(崔成龍) 대표, 일본의 ‘납북일본인구출을 위한 전국협의회’ 니시오카 쓰토무(西岡力) 부회장도 함께 가니 현지에서 일정 조정이 이뤄질 것 같습니다.”(시게루 씨)
사키에 씨는 “미 하원 청문회에서 일본이나 한국의 중고교생을 억지로 끌고 가 결혼시키는 것과 같은 반인권적인 일을 북한이 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 부부는 12일 도쿄(東京)와 14, 15일 나가노(長野)에 이어 16일 오후 요코하마(橫濱)에서 강연을 하는 등 최근 들어 더욱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시게루 씨는 지난해 12월부터 두 달간 혈소판이 줄어드는 증세로 입원해 몸속의 혈액을 바꿔 넣는 수혈을 여러 차례 받았다. 아직 요양 중이라 미국에는 사키에 씨만 가게 됐다.
노부부의 마음은 주변의 권유와 도움으로 성사된 ‘메구미가 가족과 함께 보낸 13년’이란 제목의 전국 순회 사진전에서도 잘 드러난다. 시게루 씨가 찍은 메구미의 성장 과정 사진 70여 점은 관람객들의 시선을 붙들고 있다.
“메구미가 결혼할 때 선물하려고 아기 때부터 찍어왔습니다. 딸은 성격이 밝고 장난이 심한 아이여서 항상 주위를 웃음바다로 만들었죠.”(시게루 씨)
메구미 사진전 관객 10만 돌파 지난주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린 요코타 시게루 씨의 사진전. ‘메구미가 가족과 함께한 13년’이란 제목으로 요코타 메구미가 태어나 실종되기까지의 성장 과정을 찍은 사진 70여 점이 전시됐다. 지난해 말부터 일본 전국을 돌며 열린 사진전은 지난주 관객 10만 명을 돌파했다. 사진 제공 아사히신문 지난해 11월 도쿄에서 시작해 현재 5번째 도시인 요코하마에서 열리고 있는 이 전시회는 지난주 관람객 10만 명을 돌파했다. 많은 관람객이 눈물을 흘릴 정도로 딸에 대한 부모의 사랑과 단란한 가족애에 뭉클한 감동을 받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평범한 한 가족의 행복을 빼앗아간 북한의 납치 행위에 대한 분노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메구미가 홀연 사라진 지 28년. 그간 6번이나 이사를 했지만 노부부는 딸의 물건들을 고스란히 보관하고 있다.
“김영남 씨 어머니가 아들의 물건들을 몇 달 지난 뒤 모두 태워 버렸다는 얘길 듣고 정말 공감이 가면서도 가슴이 아팠습니다. 아이가 쓰던 물건, 입던 옷을 보면 눈물이 나 보고 싶지 않은 게 솔직한 심경입니다.”(사키에 씨)
부부는 한국에서는 납북자 가족이라고 하면 감시의 대상이 되는 이중 피해를 본다는 점을 일깨워 주자 “얼마나 어려웠겠느냐”며 가슴 아파했다.
시게루 씨는 “한국도 이전에는 납치 문제에 냉담했지만 최근 생각이 바뀌었다고 들었다. 한국의 납치 피해자 가족들과는 이전부터 연대하고 있지만 한국 정부도 좀 더 다른 자세로 임한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고 말했다.
가와사키=서영아 특파원s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