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제1야당인 민주당의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44) 대표가 대표직에서 물러난 지난달 31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는 서운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국회 개회 중에 대표가 바뀌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라면서 “아직 젊으니 장래에 더 활약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집권 자민당의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인 아베 신조(安倍晋三) 관방장관도 “새 바람을 몰고 올 지도자로 기대했는데 그만두게 돼 아주 유감”이라고 가세했다.
마에하라 대표가 그만둔 것은 소속 의원이 자민당 간사장의 뇌물 수수 의혹을 주장하면서 증거물로 제시한 e메일이 엉터리로 판명됐기 때문이다. 자당 소속 간부에 대한 공격에 나섰다가 ‘헛발질’을 하고 물러난 야당 대표를 집권자가 공개적으로 위로하는 이상한 장면이 연출된 것이다.
그의 사퇴를 아쉬워한 반응은 집권당의 두 실력자를 빼곤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민주당 내의 여론도 “진작 물러났어야 했다”는 쪽이었다.
강경 우파 성향이 짙은 마에하라 전 대표의 캐릭터를 떼어 놓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 풍경이다.
지난해 9월 대표에 취임한 그는 중국위협론을 앞장서 제기하고 자위대 군비 확충 필요성을 강조하는 등 강경 발언으로 일관해 ‘자민당 뺨친다’는 지적을 받았다. 보다 못한 당내 신중론자들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군부의 청년 장교를 연상시킨다”고 비판했지만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민주당의 우경화를 주도했다.
고이즈미 총리가 마에하라 대표의 행보에 친근감을 보이며 민주당과의 대연정 가능성을 흘리면서 당 지지도는 더 떨어졌다.
아무튼 엉터리 e메일 파동이 ‘청년 장교’를 대표에서 끌어내린 계기가 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근본적인 원인은 주위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소신만을 내세워 다양한 견해를 무시한 안하무인격 태도 때문이라는 지적이 민주당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일본 정계의 변화를 바라는 이들은 그의 퇴진으로 베테랑 정치인들의 가치가 더욱 부각돼 세대교체 흐름이 주춤해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웃 나라의 세대교체에 대해 뭐라 할 처지는 아니지만 전후좌우를 살피지 않고 오른쪽으로만 치닫는 일본 정계에서 이번 사태가 ‘균형추’ 역할을 하게 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박원재 도쿄특파원 parkw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