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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고미석]‘여성 1호’가 살아가는 법

입력 | 2006-03-31 03:01:00


지난해 7월 1일 미국 최초의 여성 연방대법관 샌드라 오코너가 75세로 은퇴 선언을 했을 때 미국 사회는 온통 시끌벅적했다. 그의 퇴장이 가져올 사회적 파장이 컸기 때문이다. 보수와 진보가 팽팽하게 맞선 대법원에서 그는 사안에 따라 중도적 태도를 취해 미국 사회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저울추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81년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임명한 오코너 대법관의 성향은 온건 보수. 그럼에도 재임 기간 중 사형과 낙태 등 중요한 사회적 이슈에선 당파적 이념에 연연치 않고 진보적 목소리를 내 판결 방향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그는 2000년 대선 당시 플로리다 재검표 논란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손을 들어 줘 진보 쪽의 원성을 샀다. 반면 미시간대 로스쿨에 지원한 백인들이 ‘소수 인종 우대 정책’ 탓에 불합격했다며 소송을 제기했을 때는 부시 대통령의 의중과는 달리 합헌 쪽으로 캐스팅 보트를 행사했다.

오코너는 스탠퍼드대 로스쿨을 우등으로 졸업했지만 여성이란 이유로 번번이 변호사 취직 면접에서 고배를 들어야 했다. 지방법원을 전전하던 그는 51세 때 애리조나 주 판사에서 연방 대법관으로 발탁됐다.

미 건국 이후 최초의 여성 대법관으로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해 온 그는 은퇴 인터뷰에서 두 번째 여성 대법관이 탄생한 뒤에야 비로소 발 뻗고 잘 수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제2의 대법관은 1993년 민주당의 빌 클린턴 대통령이 지명한 진보 성향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였다. 최초의 여성 대법관으로서 얼마든지 영광을 누리고 안주할 수 있었던 오코너가 1988년 유방암 수술을 받고도 2주 만에 복귀했을 정도로 일에 억척스럽게 매달렸던 이유는 바로 자기가 잘해야 또 다른 여성이 기회를 얻는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최초의 여성’ 타이틀은 본인에게 큰 영예가 아닐 수 없다. 요즘 우리 사회에선 최초의 여성 총리가 탄생할 것인지에 관심이 높다. 그러나 ‘여성 1호’의 책임은 자신의 성취에 만족하지 않고, 그 분야에서 제2, 제3의 여성들이 나올 때까지 실력과 노력을 다하는 데 있다. 기업이든 국가든, 모든 여성 1호들은, 능력도 자격도 충분했지만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꿈을 이룰 수 없었던 선배들에게 빚지고 있다. 또 실력과 의욕을 갖춘 후배들이 ‘여자를 시켜 봤더니 역시…’라는 핑계 앞에서 좌절하지 않도록 하는 것도 그들의 몫이다.

왠지 찌푸린 인상으로 기억에 남는 전임 총리 덕(?)에 편안한 미소를 지닌 새 총리 후보는 일단 점수를 얻고 들어가는 것 같다. 앞서가는 감은 있지만, 만약 최초의 여성 총리가 탄생한다면, 자신을 지명해 준 사람이나 당파가 아니라 오직 국민만을 섬긴다는 각오 아래 판단하고 행동하기를 기대해 본다. 그리고 총리 자리에 머물고 있을 땐 국민들이 그가 ‘여성’이란 사실을 잊고, 그가 떠난 뒤엔 또 다른 ‘여성’ 총리를 간절히 떠올리도록 일해 주면 좋겠다.

대법관의 자격을 묻는 질문에 오코너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The right person at the right spot in the right time.’

적절한 때 적절한 자리에 있는, 자기 역할을 이해하고 능력을 갖춘 적임자여야 한다는 것은 비단 미국 대법관의 조건만은 아닐 것이다.

고미석 문화부 차장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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