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현대·기아자동차그룹 본사.
정문에서부터 방문객을 일일이 통제하는 모습에서 사뭇 긴장이 감돌았다.
직원들은 전날에 이어 일을 손에 잡지 못했다. 틈날 때마다 삼삼오오 모여 검찰 수사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았다. TV와 인터넷으로 전해지는 뉴스에 촉각을 곤두세우기도 했다.
정몽구 회장도 27일부터 회장실을 비웠다. 정 회장은 주요 임원들과 따로 만나 검찰 수사에 대해 논의하면서 ‘힘든 심경’을 털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그룹 임직원들은 “마침 찾아온 꽃샘추위가 더욱 시리게 느껴진다”고 말하기도 했다.
○ “경영권 승계에 차질 생기나” 촉각
이번 검찰 수사는 현대차그룹이 2000년 ‘왕자의 난’ 이후 옛 현대그룹에서 분리된 뒤 맞은 최대 시련이다. 원화 가치 상승(원화 환율 하락) 등의 악재로 비상경영에 들어간 상태에서 수사까지 받게 돼 내우외환(內憂外患)인 셈이다.
특히 검찰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이번 수사가 비자금 조성 혐의를 밝히는 데 그치지 않고 경영권 승계 문제까지 건드리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수사의 강도가 전례 없이 강하고 특히 오너 일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룹 본사가 압수 수색을 받은 것은 옛 현대그룹을 포함해도 처음이다. 정 회장의 아들인 정의선 기아차 사장이 최대 주주인 글로비스는 집중적인 수사 대상이 되고 있다.
그룹 안에서는 정 회장이나 정 사장까지 검찰의 소환 조사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자칫하면 지금까지 진행된 후계구도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 “해야 할 일 많은데…”
현대차그룹은 올해 의욕적으로 대형 사업을 벌여 왔다.
기아차 미국 공장과 현대차 체코 공장 건설 계획을 발표했고 현대제철의 일관제철소 건설도 첫발을 내디뎠다. 올해 말에는 기아차 슬로바키아 공장이 완공된다.
그러나 악재도 줄을 잇고 있다. 과장급 이상 임직원 임금을 동결하는 비상경영을 선언했지만 노조 반발이 만만치 않다. 협력업체에 납품 단가 인하를 요구했다가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를 받았다. 이어 검찰 압수 수색이라는 치욕까지 겪었다.
그룹에서는 검찰 수사와 경영진의 출국 금지로 각종 국내외 사업이 차질을 빚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수사가 내부자 제보에서 비롯됐다는 검찰 발표에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인사에 불만을 품고 현대차그룹을 떠난 전직 고위 임원이 제보자일 것이라는 소문이 나돈다. 정 회장의 ‘깜짝 인사’ 스타일의 부작용이 나타났다는 탄식도 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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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똥 튈라’ 다른 기업들도 긴장
재계는 검찰의 현대차그룹 수사의 여파가 혹시 다른 기업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재계 서열 4위인 SK그룹과 1위인 삼성그룹에 이어 2위인 현대차그룹이 곤욕을 치르는 것이 남의 일만은 아니라는 반응이다.
검찰이 “현대차그룹 규모의 대기업은 아니지만 다른 기업들에 대해서도 수사 계획을 갖고 있다”고 밝힌 뒤 불안감은 더 커지고 있다.
한 대기업 임원은 “현대차그룹이 당연히 문제가 있어 수사 받는 것이겠지만 검찰이 건축 인허가 로비 의혹만으로 이 정도 그룹의 본사에 대해 전방위 압수 수색을 실시한 것은 뭔가 격이 맞지 않는 느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재계의 다른 관계자는 “이번 사건으로 반(反)기업 정서가 더 확산된다면 기업에 좋을 일이 없다”며 수사 확대에 불안한 속내를 드러냈다.
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