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2일 오후 인도 동부의 산업도시 첸나이. 도로 곳곳에 큼지막한 글씨의 대형 간판이 수십 개 붙어 있다. ‘우리는 지금 꿈을 이루는 길을 닦고 있다(The road to our dreams is under construction).’ 인도인에게 꿈을 심어 주려는 정부의 메시지다. ‘네트워크를 생각하자(Think network)’라는 간판도 쉽게 눈에 띈다.
뉴델리 시내에서 만난 미국 자동차부품업체의 중역 조지 헐트만(52) 씨는 “인도의 모든 자동차 뒤에 붙어 있는 ‘Horn, Please(경적을 울려라)’라는 표어도 잠에서 깨어난 인도를 적절하게 표현하는 말”이라고 말했다. 11억 인구의 공룡 인도가 잠에서 깨어나고 있는 것이다.
▽인도식 ‘국력 제조’=‘제조업과 정보기술(IT)’의 양 날개로 초강대국으로 진입하겠다는 게 인도의 ‘양손(two-hand) 전략’이다. 우선 중국이 떠맡았던 ‘세계의 공장’ 역할을 인도로 옮겨 오겠다는 것이 제1 전략.
실업 인구가 많은 인도로서는 고용 효과가 큰 제조업을 유치하려는 노력이 집요하다. 인도 상공회의소(FICCI)의 크리샨 칼라 상임고문은 “인도는 낙후된 인프라로 인해 중국에 비해 훨씬 뒤진 제조업을 육성하겠다는 의지가 있다”고 말했다.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IT 등 지식산업에 강한 특유의 강점을 살려 ‘성장의 단축 코스’로 삼으려는 2전략을 병행한다는 것이 인도의 구상.
23일 첸나이의 경제특구인 타이덜 파크. 32개 IT 전문기업이 입주해 있는 이 단지의 60%는 다국적 기업. 이 지역 운영책임자인 N 바가바시 회장은 “인도가 아시아 IT 국가들을 한데 묶는 중심 역할을 하겠다”고 자신했다.
▽대국의 자존심=인도는 1인당 소득은 미미하지만 인구가 11억 명이나 돼 국내총생산(GDP)은 2004년과 2005년 각각 세계 12, 14위 규모다. 경제성장과 함께 ‘실질 구매력’도 상승하고 있다. 인도 전국경제인연합회(CII) 구르팔 싱 부회장은 “앞으로 30년 안에 인도가 중국 미국에 이어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대국으로서의 자존심은 곳곳에서 나타난다. 지난주 인도 경제계의 화제는 ‘뭄바이만 한 싱가포르’였다. 인도의 유력 경제지 이코노믹타임스가 최근호에서 “뭄바이만 한 싱가포르가 감히 이런 일을?”이라는 기사를 실은 것. 인도 중앙은행이 싱가포르에서 금융업무를 확대하려 하자 싱가포르 금융당국이 신용도 문제를 제기하며 “정부의 보증을 받아 오라”고 한 데 대해 불쾌감을 나타낸 것이다. 싱가포르를 미래의 경쟁상대로 보지 않는 인도의 자존심이다.
첸나이 인도공과대에서 만난 한 교수는 “친디아(차이나+인디아)라는 말 대신 머지않아 인디나(인디아+차이나)라는 말도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몸 불리기에 나선 공룡=인도는 세계적 기업을 대상으로 외자 유치에 팔을 걷어붙였다. 인도의 지난해 4월부터 12월까지 외국인 직접투자는 37억 달러에 이른다. 이는 2004년 같은 기간에 비해 45%가 증가한 수치. 인도 항공부의 R K 싱 차관은 “도로 항공 등의 인프라는 물론 주요 산업에 대해 해외투자를 적극 받아들일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포스코가 최근 12조 원에 이르는 인도 사상 최대 규모의 현지투자를 발표한 것도 같은 맥락.
국성호 조흥은행 뭄바이지점장은 “세계 지식산업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해외 거주 인도인(일명 ‘인교·印僑’)들이 2004년 한 해에만 333억 달러를 모국에 투자했다는 통계도 있다”고 전했다.
인도는 외자 유치에 만족하지 않고 ‘거대기업 쇼핑’에 나서고 있다. 포스코 인도사무소의 도상무 소장은 “인도 갑부 락시미 미탈 씨가 소유한 세계 1위의 철강업계 미탈 스틸이 세계 2위의 아르셀로(프랑스·룩셈부르크 합작사)를 인수하겠다고 발표한 것이 대표적 사례”라고 말했다.
첸나이·뭄바이·뉴델리·아그라=김동원 기자 aviskim@donga.com
■“코리아 메바리아훙”
24일 오전 11시 인도 첸나이 인근 현대자동차 인도 공장. 상트로(아토스의 인도모델) 생산라인에서 1분에 1대꼴로 자동차가 생산됐다. 현대차는 지난해 15만5167대를 판매해 인도의 국민기업 마루티에 이어 판매대수 2위(시장점유율 18.2%)에 올랐다. 일본의 혼다와 도요타는 각각 4, 8위.
임흥수 현대차 인도법인장은 “현재 연간 25만 대의 생산능력을 내년까지 50만 대로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현대차는 기존공장 옆에 제2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타밀나두 주 공무원 자그버드 싱 씨는 “현대차의 경영방식을 ‘현대 웨이’라고 부를 정도로 경영모델의 하나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공장 조립라인에서 만난 무타르 키란(35) 씨는 “한국은 인도 사람들에게 ‘메바리아훙’(현지어로 아주 좋다는 뜻)”이라며 “이곳에서 일해 여덟 식구가 편히 살 수 있다”고 말했다.
가전시장에서는 현재 LG전자가 판매 1위를 달리고 있고, 삼성전자도 그 뒤를 바짝 쫓고 있다. 뉴델리에 있는 LG전자 인도법인의 김인호 부장은 “인도 중산층 이상 가정에서 절반가량이 한국산 제품을 1개 이상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한국산은 신뢰로 통한다”고 전했다.
KOTRA 뭄바이 무역관의 윤효춘 관장은 “동아시아는 인도가 예의주시하는 파트너”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인도는 한국 태국 싱가포르 등 동아시아를 중시하는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싱가포르와는 지난해 6월 포괄적 경제협력협정(CECA)을, 태국과는 이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상태. 한국과는 FTA 공식 협상 개시를 앞두고 있다.
어려움도 없지 않다. 국성호 조흥은행 뭄바이 지점장은 “합작파트너와의 계약서 해석 문제로 이곳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종종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인도에 진출하려는 한국기업들은 합작기업보다는 100% 투자를 하는 단독 진출이 유리하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첸나이·뭄바이=김동원 기자 daviskim@donga.com
■ ‘인도의 전경련’ 싱 부회장
“인도가 세계 빅5를 거쳐 빅3에 진입하는 것은 시간문제 아닙니까.”
지난달 20일 뉴델리에서 만난 인도 전국경제인연합회(CII)의 구르팔 싱(사진) 부회장은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되물었다. CII는 한국의 전국경제인연합회처럼 기업들의 연합체로, 6000여 개의 인도기업이 회원사.
이어 그는 “지금은 한국이 인도의 19번째 무역국(2004년 기준)이지만 머지않아 7, 8대 무역국으로 진입할 것”이라며 “한국과는 앞으로 할 일이 엄청 많을 것”이라고 연대를 강조했다. 인도는 한국의 수출대상국 11위, 수입은 26위.
최근 무역규모 증가만 봐도 이런 예상은 실현가능하다는 것. 실제로 양국 간 교역 규모는 2001년 25억1400만 달러(약 2조5140억 원)에서 지난해 63억9100만 달러로 4년 새 154% 늘었다.
“인도에서는 당분간 전기 전자 자동차 건설 해운 물류 등 인프라를 넓힐 수 있는 업종이 특히 유망합니다.” 만모한 싱 인도 총리가 최근 △에너지 △인프라 △고용효과가 큰 대형 설비산업에 집중적인 투자를 하겠다고 밝힌 대목을 상기시키며 이같이 강조했다.
뉴델리=김동원 기자 davis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