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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예종석]투자 없는 경제 ‘10년 뒤’가 걱정

입력 | 2005-12-29 03:05:00


참으로 걱정이다. 이 나라 경제의 미래를 결정지을 성장 동력인 설비투자가 몇 년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기업들은 70조 원에 이르는 자금을 쌓아 놓고 정부와 대주주의 눈치는 물론 노동조합의 낌새까지 살피며 오래된 레코드판 헛돌 듯 계속 고비용과 규제 탓만 하고 있다. 이 와중에 정부의 경제 책임자는 그런 기업들의 행태를 “수익모델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경제 평론가처럼 시큰둥하게 이야기한다. 우리 경제의 핵심 주체들이 이런 식으로 상대방 탓만 하며 시간을 소모한다면 우리의 앞날은 뻔하다.

우리 경제의 내부를 살펴보면 그런 걱정은 더욱 커진다. 현재 우리 경제는 전자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철강 기계 등 일부 품목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다. 이들 6대 수출산업은 우리나라 수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제조업 생산의 절반 이상을 점한다. 그러나 이 품목들이 10년 후에도 우리를 먹여 살린다는 보장은 없다.

최근 경기 과열을 걱정할 만큼 맹렬한 기세로 우리를 쫓아오는 중국, 장기간 지속된 불황에서 벗어나려는 듯 기지개를 켜며 설비투자에 박차를 가하는 일본을 생각하면 우리 경제의 앞날에 대한 걱정은 더욱 커진다. 그나마 일어나고 있는 우리 기업들의 투자도 기존 설비 확장과 유지 보수에 치중되고 있다. 미래를 위한 신제품과 연구개발 투자는 오히려 줄고 있어 불안은 더욱 가중된다.

외환위기는 많은 것을 앗아 갔다. 많은 기업이 사라져 갔으며 직장인들은 일자리를 잃고 거리로 내몰렸다. ‘구조조정’이란 단어는 직장인들에게 어린아이들 울음을 그치게 했다는, 전래동화 속 곶감보다도 더 무서운 존재가 되었다.

더 무서운 것은 기업인들의 투자 의욕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그동안 기업인들은 인원 감축, 부채비율 조정 등 기업 지키기에 전력투구하느라 투자 같은 건 쳐다볼 여유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게다가 어느 재계 인사의 말처럼 ‘돈 주고 뺨 맞는’ 식의 정경유착 책임 추궁까지 당하고 있으니 투자 의욕이 생길 리 만무한 것이다.

어설픈 양비론을 펼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정부와 기업이 서로에 대한 책임 전가 공방을 그만두고 우리 경제의 재도약을 위해 서로 협력하고 격려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점만큼은 강조하고 싶다.

아직도 우리 기업은 구조조정 중이다. 이제 구조조정은 그만 끝내고 새로운 도약을 준비해야 할 시기이다. 그러자면 정부와 기업, 쌍방이 자신의 임무를 다해야 한다. 정부는 수익모델 부재를 지적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기업이 수익모델을 찾게끔 유도해야 한다. 그러자면 풀 수 있는 규제는 과감하게 다 풀어야 한다. 기업도 여건 탓은 그만하고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국가도 기업도 투자 없이 성장할 수는 없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투자를 늘려서 고용을 창출하고, 소득을 키워서 소비를 증가시키는 선순환의 고리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경기 회복의 동력은 투자일 수밖에 없다.

현대자동차 공장을 유치하기 위해 미국의 앨라배마 주는 공장 용지를 주에서 대신 매입해 주고 건설비를 일부 부담하기도 했으며, 전담 공무원을 배치해 현대 직원 가족들의 뒤치다꺼리까지 했다고 한다. 과연 우리 정부가 이런 정도의 배려를 우리 기업에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기업도 현실에 안주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군림하던 GM과 초우량 기업의 상징이었던 코닥도 제품에 대한 투자를 등한시해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그러나 불황기에 과감하게 투자해서 성공한 기업의 사례도 허다하다. 투자는 결국 기업이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정부는 그 길을 열어 주어야 한다.

예종석 한양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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