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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디자이너]자동차 디자이너 김한철씨

입력 | 2005-12-09 02:58:00


《한국 자동차 메이커가 자체 개발로 고유 모델을 생산한 것은 불과 30년 전이다. 1975년 출시된 포니가 그것이다. 그러나 그 디자인은 이탈리아 전문 회사에 의뢰했다. 한국 자동차 디자인은 그 후 10년이 지나서야 ‘국적’을 얻는다. 외국에 의존하지 않고 한국인의 머리와 손으로 자동차를 디자인하기 시작한 게 20여 년 전부터다. 이런 짧은 역사에도 20명 남짓한 인력으로 스포츠카를 디자인에서 생산까지 할 수 있는 회사가 있다. 바로 프로토자동차다. 설립자 김한철(43·사진) 대표는 한국 최초의 카로체리아(carrozzeria·이탈리아의 자동차 공방에서 유래된 말로 디자인을 비롯해 엔지니어링과 생산 능력을 갖춘 소규모 자동차 회사)를 실현하고 있다.》

○ 국내 여섯번째 완성차 제작업체 등록

김 대표는 어릴 때부터 자동차 디자인 외길을 걸어왔다. 이탈리아에서 자동차 디자인을 전공했고, 졸업 후 쌍용자동차에서 일했다. 그는 직접 디자인한 자동차를 생산하고 싶은 마음에 5년 만에 독립했다. 1994년 프로토디자인을 설립해 자동차 부품을 만들거나 제품 디자인 서비스도 했다. 이후 자동차 업계에 알려지면서 전시용 차의 스타일링과 엔지니어링, 양산(量産) 차의 부분적인 디자인 용역을 맡으면서 역량을 키워 왔다.

궁극의 꿈은 스스로 개발한 차를 생산하는 것. 그는 대량 생산해서는 대기업과 경쟁할 수 없으므로 스포츠카를 소량 생산해 수출하는 것은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해외에서도 스포츠카를 생산하는 작은 회사들이 많이 있다.

프로토자동차가 처음으로 개발한 정통 스포츠카 ‘스피라’. 충돌 테스트를 통과해 내년부터 국내에서 생산 판매가 가능하며 미국과 터키 등에 해외 수출 계약도 이뤄졌다.

그는 외환위기 당시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하는 제품 디자인 용역을 포기하고 스포츠카 개발에 들어갔다. 6개월 동안 직원의 월급을 주지 못할 정도로 어려운 시기도 있었지만 2000년에 드디어 정통 스포츠카 개발에 성공했다.

프로토가 개발한 스포츠카는 페라리나 람보르기니처럼 엔진이 앞뒤 차축 사이에 있고, 스페이스 프레임 구조라는 점에서 국내 최초의 정통 스포츠카다. 프로토는 초기 모델을 발전시켜 2002년 ‘스피라’라는 판매 모델을 발표했으며, 이듬해 현대 기아 GM대우 쌍용 르노삼성차에 이어 여섯 번째로 건설교통부에 완성차 제작업체로 등록했다.

○ 한국의 카로체리아

프로토가 완성차 제작업체로 등록했다는 의미는 남다르다. 프로토는 대기업이 아니라 불과 20여 명이 근무하는, 김 대표가 꿈꾸었던 진정한 자동차 공방(카로체리아)이기 때문이다.

프로토는 10월 또 하나의 관문을 지났다. 스포츠카 스피라가 충돌 테스트를 통과한 것. 충돌 테스트는 자동차 제작업체가 넘어야 할 필수 코스인데 스피라는 한 번 만에 까다로운 기준을 통과했다. 프로토는 이 테스트 통과로 기존 자동차 업계로부터 받았던 의구심을 단숨에 잠재웠다.

프로토는 국내 양산차를 리무진으로 개조하는 프로젝트를 통해 디자인을 비롯해 엔지니어링과 생산 기술력을 상당한 수준으로 끌어올렸던 것이다. 청와대에서도 대통령 의전용 리무진 개발을 의뢰할 정도다.

청와대 의전용 리무진. 청와대의 의뢰로 에쿠스를 리무진으로 개발했다. 프로토자동차는 승용차를 리무진으로 개발하는 기술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 국내 처음으로 자동차 디자인 수출

프로토의 명성이 높아지면서 디자인 수출의 길도 자연스럽게 열렸다. 2004년 중국의 우시자동차와 난징피아트자동차에서 직접 찾아와 디자인을 의뢰했다. 프로토는 올해 이들 회사에 각각 두 개의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스타일링부터 엔지니어링, 모델링이 포함된 대형 프로젝트다.

중국의 자동차 디자인 시장은 유럽과 일본 회사들이 장악해 왔다. 그러나 프로토는 디자인 품질은 같은 수준이나 속도가 훨씬 빠르다는 경쟁 우위를 보여 주었다.

이 같은 경쟁 우위의 배경에는 프로토의 융통성이 자리잡고 있다. 프로토는 하나의 스타일을 고집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용도와 목적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디자인을 추구한다. 이는 곧 김 대표의 디자인 철학이다.

그는 “디자이너는 특정 스타일에 집착하지 않고 해당 차의 개념에 부합되는 디자인을 해야 한다”며 “최고급 스포츠카는 물론 대중적인 승합차도 디자인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김 신 월간 ‘디자인’ 편집장 kshin@design.co.kr

사진 제공 디자인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