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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예술]나누고 베풀다 숲이 된 사람…‘데르수 우잘라 ’

입력 | 2005-11-26 03:01:00

저녁노을이 물든 우수리 강. 사진 제공 갈라파고스



◇데르수 우잘라/블라디미르 아르세니에프 지음·김욱 옮김/368쪽·1만2800원·갈라파고스

차갑고 조용한 밤이었다.

데르수는 숲에서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와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는 아까부터 뭐라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무슨 일이냐고 묻자 그는 계곡을 타고 조잘거리며 흐르는 시냇물이 어제 갑자기 불어 닥친 바람에 대해 이야기했으며, 마른 풀은 며칠 동안 비가 오지 않아 굶어 죽을 지경이라고 한탄한다고 말했다.

데르수의 모습이 벌겋게 타오르는 불빛을 받아 신비롭게 비쳤다. 어둠 저편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푸른 달빛을 닮아 있었다. 이 야만인은 하늘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무슨 원시적인 종교가 남아 있는 게 아닐까.

그러나 매번 그의 설명은 싱거웠다. 별이 뭘까? “저기 별 떴다. 보면 된다.” 달은 뭘까? “눈 있는 사람. 달 본다. 저게 달이다.” 그러면 하늘은? “환할 땐 파랗다. 캄캄해지면 까맣다. 비 올 때 흐리다….”

무한함 앞에서 느끼는 공포와 허무의식, 그것은 문명인만이 갖고 있는 것일까.

시베리아 우수리 강변의 숲이 된 사람, 데르수 우잘라.

그는 20세기 초반만 해도 태곳적 모습을 간직하고 있던 시베리아의 원주민 고리드족의 후예다. 생명이 생명으로 대접받던 원시의 나날을 가슴에 품고 사는 사냥꾼이다.

데르수는 1902년부터 저자가 이끌었던 러시아 극동탐사대의 일원으로 참가했다. 블라디보스토크 수렵부대의 지휘관으로 있던 저자는 당시 지도상의 빈칸으로 남아 있던 연해주 시호테알린 산맥 중부지대를 훑었다.

저자는 데르수와 동행하며 자연과 더불어 모든 생명체와 나눔의 기쁨을 함께하는 원시인의 삶의 지혜에 깊은 감명을 받는다. 이 책은 그 생생한 기록이다.

평생을 숲과 함께 살아온 데르수는 아무 욕심이 없었다. 사냥을 하면 이웃과 똑같이 나눠 가졌고, 얼룩바다표범과도 말을 주고받았다. 그는 짐승을 ‘사람’이라고 불렀지만 ‘잉크’라는 말은 몰라 ‘더러운 물’이라고 표현했다.

저자는 10년에 걸친 탐사가 끝나자 데르수를 데리고 하바로프스크로 돌아왔다. 그의 몸은 병들어 더는 숲에서 혼자 살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자유로운 영혼은 갑갑한 문명을 견디지 못했다. 한번은 수도요금을 계산하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미쳤다! 물마시고 돈 준다! 강에 돈 안 줬다!” 데르수는 아무르 강을 떠올렸다. “거기 물 많다!”

그는 도시에서의 삶이 얼마나 각박한지 조금씩 깨달아 갔다. 그는 도시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호랑이가 아닌 사람에게 두려움을 느꼈다. 그에게는 풍요로운 도시보다는 춥고 배고픈 숲이 더 행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데르수는 아무 말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2주일 뒤 변시체로 발견된다. 강도의 소행이었다.

숲에서 태어난 데르수는 결국 숲에 묻혔다.

커다란 시베리아소나무가 곁을 지키고 있는 그의 무덤가에 어디선가 참새 한 마리가 후르르 날아들었다. “의젓한 사람!” 데르수는 이 새를 그렇게 불렀었다….

이기우 문화전문기자 keyw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