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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아홉 살의 필독서 50권]소크라테스의 변명

입력 | 2005-11-11 03:08:00


소크라테스는 사실 부담스러운 인물이다.

시대 비판가로서 그가 논적(論敵)으로 삼은 것이 ‘민주주의’였던 만큼, 이 시대에 ‘반민주투사’ 소크라테스를 소개한다는 것은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소크라테스의 언행이 지닌 고전적 가치는 매우 강렬하다. 사실, 고전의 가치란 그것이 전하려 하는 메시지 자체에 있다기보다 독자들을 ‘삶’ ‘인간’ ‘세계’와 관련된 주제에 끌어들여 깊은 사색으로 유도하는 흡인력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플라톤은 여러 대화편에서, ‘정의’ ‘덕’ ‘행복’ ‘사랑’ 등 삶의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며 삶에 대한 반성을 요구하는 스승 소크라테스를 소개하는데, 특히 ‘변명’은 소크라테스의 철학적 진수가 담겨 있는, 플라톤의 가장 빼어난 대화편으로 꼽힌다. 여기서 독자는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마다하지 않는 투쟁적 변론을 접하며 철학적 사유의 자극을 받게 된다.

‘변명’은 쉬운 문장, 적은 분량, 단순한 줄거리로 마구 읽고픈 유혹을 갖게 하는 그야말로 만만한 고전이다. 그러나 ‘마구’ 읽어 가는 만큼 ‘변명’에 진열되어 있는 사유의 보석들도 마구 지나치며 놓쳐 버린다. 입시 부담에 찌든 청소년들은 더욱 그러하다.

요즘 청소년들은 고전을 많이 ‘안다’. 요약본으로 알고, 또는 마구 읽으며 날림으로 안다. 하지만 고전에 대한 그러한 이해와 감상에 머리와 가슴이 개입했을 리 만무하다.

고전을 고전답게 읽어야 한다는 교육적 요구 앞에서 안광복의 저서는 빛을 발한다. 현직 교사이자 고대 그리스 철학을 연구하는 학자인 저자는 원어의 어감을 최대한 살리면서 청소년들이 흡수하기 쉬운 문장으로 풀어 번역하였고, 마구 읽어 넘기지 않도록 과감히 박자를 끊어 가며 어렵지 않으면서도 깊이를 잃지 않는 해설을 적재적소에 넣었다.

저자는 소크라테스 당시의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적절하게 대입해 ‘변명’에 생동감을 불어넣고, 플라톤의 다른 대화편들은 물론 역사서 문학서까지 끌어들여 지식적인 이해를 돕는다. 그리고 때로는 저자가 스스로 소크라테스에게 시비를 걸어 독자로 하여금 비판적 거리를 둘 수 있도록 한다.

이 책을 통해 청소년 독자들은 아테네 법정 체계와 법령의 내용, 대체로 ‘덕’이라 번역하는 ‘아레테(arete)’의 의미, ‘악법도 법이다’ ‘너 자신을 알라’ 등의 경구에 관련된 진실, 소크라테스 특유의 논박술의 논리 구조 등에 대해 익히게 된다. 동시에 ‘착하고 아름답고 올바르게 살라’며 영혼을 깨우고 실천적 고민을 촉구하는 2400여 년 전 아테네 시민들을 향한 소크라테스의 처절한 외침을 당시의 문제의식 그대로 생생하게 들으며 반성적 삶의 자극을 받게 될 것이다.

책을 덮으며 소크라테스도 함께 덮어 버리자. 소크라테스가 아테네로부터 자유로웠듯이, 우리도 소크라테스로부터 자유로워지자. 다만, 독단과 편견을 경계하며,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 ‘착하고 아름답고 올바르게’ 사는 것인지 재차 캐물어 보자. 그리고 고투(苦鬪)의 각오로 신념에 일치하는 삶을 위해 고민하자. ‘소크라테스 읽기’의 의의는 바로 여기에 있다.

김형섭 천안북일여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