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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팀장 공운영씨 자술서 내용

입력 | 2005-07-27 03:06:00

13쪽 분량 자술서국가안전기획부 근무 시절 미림팀장을 지낸 공운영 씨가 26일 공개한 13쪽 분량의 자술서. 안기부 도청 테이프의 유출 과정과 자신의 심경을 담고 있다. 연합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의 전 미림팀장 공운영(58) 씨가 26일 공개한 자술서는 A4 용지 13쪽.

여기에는 안기부 도청 활동의 계기, 테이프 유출 경위 및 공 씨의 퇴직 후 행적이 상세하게 나타나 있다.

▽도청활동 계기=공 씨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 달리 김영삼(金泳三) 대통령이 당선되기 전인 1992년부터 미림팀장을 맡았다.

업무를 과학화하라는 상부의 지시에 따라 일부 인원을 선발해 훈련시킨 후 도청업무를 시작했다.

음식점 종업원 등 협조자를 통해 얻은 정보의 사실 여부가 의문시되면서 도청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러나 YS 정부 출범 직후인 1993년 미림팀 활동이 일시 중지됐다. 공 씨는 이때 보직을 맡지 못하면서 조직에 대해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

“갖은 고생을 다 하고, 성과도 인정할 때는 언제고 이렇게 미림 요원을 푸대접할 수 있느냐”며 격분했던 공 씨는 1994년 미림팀을 다시 만들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는 “언젠가는 또다시 도태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앞선 나머지 이를 대비해 중요 내용은 은밀히 보관하기로 작심했다”고 진술서에 적었다.

▽테이프 유출 경위=공 씨는 김대중(金大中) 정부 출범 이후 직권 면직된다. 공 씨는 함께 면직된 동료 임모(58) 씨로부터 삼성그룹 핵심 인사 및 박지원(朴智元)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과 돈독한 관계라는 재미교포 박모(58) 씨를 소개 받는다. 박 씨는 삼성과의 사업상 거래를 위해 녹취 문건을 원했다.

공 씨는 “삼성과 관련된 문건 몇 건만 잠시 활용했다가 되돌려 받으면 임 씨는 물론 나의 복직에 도움이 되고, 삼성 자체에 약점이 될 수 있는 사안만을 제시할 경우 공개될 수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박 씨에게 녹취록 문건을 전달했다.

박 씨와 삼성의 협상이 여의치 않자 공 씨는 박 씨에게 이 문제를 거론치 않기로 약속한 후 자료를 돌려받았다.

그러나 그 직후 국정원 요구에 따라 테이프 200여 개와 문건을 반납했다. 국정원은 도청 테이프와 녹취록 문건이 유출된 사실을 삼성으로부터 신고받았다.

국정원 직원은 몇 개월 뒤 다시 공 씨를 찾아와 “삼성과 모종의 사건이 있었느냐”고 물었다. 공 씨는 박 씨가 다시 삼성을 협박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욕도 하고 사정도 한 뒤 약간의 여비와 미국행 항공권을 줘서 미국으로 돌려보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최근 공 씨는 박 씨의 아들이 찾아왔다는 얘기를 임 씨로부터 전해 들었다.

임 씨는 “MBC 기자가 만나자 해서 쫓아 버린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로 미뤄 공 씨와 임 씨는 MBC에 테이프를 유출한 당사자가 박 씨나 그의 아들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퇴직 후 행적=공 씨는 퇴직 후 자신의 사업에 대해 “구멍가게 수준인데도 과대평가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통신 가입자 유치 영업을 했으나 3년간 적자를 면치 못했다는 것, 평균 월수입은 1800여만 원 수준으로 직원 봉급과 사무실 임대료를 제외하면 매달 몇 백만 원씩 적자를 낸다는 것이 그의 설명.

공 씨는 1997년 대선 당시 “공직을 천직으로 생각하며 소임을 다했으나 김대중 후보가 당선되면 엄청난 불이익이 예상되기 때문에 은밀히 선을 대어 (이회창 후보를) 지원한 바 있음을 시인한다”고 밝혔다.

그는 “나 자신을 위해 했을 뿐”이며 “지난 대선 때도 순수 민간인 차원에서 지원했다”고 주장했다.

공 씨는 “도청 업무를 수행하면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으며 우리 사회는 정치 경제 사회 전 분야에 걸쳐 외면과 달리 이면에는 아첨, 중상모략, 질투 등 혼돈의 연속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것을 낱낱이 폭로함으로써 사회가 제자리를 찾고 과거를 청산하는 데 다소나마 역할을 하고 싶었지만 이제 모든 것을 무덤까지 갖고 가겠다”며 “염려했던 분들은 안도하시겠지만 나라의 안정을 위해서 참을 뿐”이라고 밝혔다.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