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정보 공유가 어렵다는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의 ‘폭탄 발언’은 11일 나왔다. 당시 야치 차관은 일본을 방문 중인 유재건(柳在乾·열린우리당) 국회 국방위원장 등 국방위원들과 조찬을 함께했다.
한나라당 박진(朴振) 의원이 먼저 북한 핵 관련 주요 쟁점에 대해 일본 측의 의견을 물었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한일 간 정보 공유 문제를 비롯해 △북한을 6자회담에 복귀시키기 위한 일본 측 대응 카드 △북한의 핵 실험 가능성에 대한 일본 측의 분석 등이 박 의원이 질문한 내용의 요지였다.
야치 차관은 답변을 통해 즉각 한미일 정보 공유의 이상 기류를 거론했다. 그는 “미국이 한국을 신뢰하지 않는 것 같아서 일본은 한국과의 북핵 관련 정보 공유가 망설여진다”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참석자들은 야치 차관의 발언에 상당히 당황해했다. 한나라당 송영선(宋永仙) 의원은 24일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간단히 인사만 하고 덕담만 나누는 자리인 줄 알았지만 야치 차관이 작심하고 이 문제를 거론해 놀랐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런 긴장된 분위기 탓인지 조찬 시간도 당초 예정된 1시간에서 2시간으로 늘어났다.
조찬 직후 박 의원은 유 위원장에게 “일본 외무성의 고위 관리가 이렇게 노골적으로 한일 간 정보 공유에 이상이 있다고 발언한 것은 중대 사안”이라며 귀국 후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에게 보고할 것을 요청했다.
야치 차관의 발언 내용은 당시 면담에 참가했던 송 의원이 23일 당 주요 당직자회의에서 일부 대목을 보고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송 의원은 “이젠 한미, 한일 관계를 제대로 봐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일본을 다녀온 국방위원들은 귀국 후 국회에 제출할 보고서에 야치 차관의 발언을 명기하는 문제를 놓고 신경전을 벌였다.
유 위원장은 “야치 차관의 발언은 국익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한일 양국의 신뢰가 약해지지 않도록 공동 노력할 필요가 있다’라는 표현을 쓰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에 박 의원은 “야치 차관의 발언은 반드시 보고서에 기록해야 한다”고 반발했으나 결국 보고서에 포함되지 않았다.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