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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권장도서 100권]종의 기원-찰스 다윈

입력 | 2005-05-15 17:59:00


1999년 미국에서는 학자 및 예술가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지난 1000년 동안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 1000명을 묶은 ‘1000년, 1000인’이란 책이 출간됐다.

다윈은 갈릴레이, 뉴턴과 함께 10위 안에 선정되었다. 다윈의 진화론, 즉 자연선택론은 그간 많은 논쟁을 거쳐 이제 생물학뿐만 아니라 인문사회과학 분야와 예술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영향을 미치는 확고한 이론으로 자리 잡았다.

또 알게 모르게 현대인의 사고체계에 기본 틀을 제공하고 있다. 다윈의 이론이 학문은 물론 사회 전반에 끼친 영향은 가히 혁명적이라 평가되어 과학사학자들은 이를 ‘다윈혁명’이라 일컫는다.

다윈의 자연선택론이 등장하기 전 2000년 동안 서양의 자연과학을 지배해 온 사상적 토대는 플라톤의 본질주의였다. 플라톤에 의하면 이 세상은 영원불변의 완벽한 전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전형으로부터의 변이는 진리의 불완전한 투영에 불과하다.

이 같은 절대주의 관념은 훗날 기독교 신학에 의해 더욱 굳건히 서양인의 사고방식을 지배하게 된다.

‘종의 기원’의 출간은 이 같은 서양의 사상체계를 근본부터 뒤흔든 엄청난 사건이었다. 다윈은 변이가 바로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존재임을 일깨워 주었다.

하지만 진화론만큼 오해를 많이 받은 이론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다윈의 이론은 세상에 나오자마자 지금까지 줄곧 오해와 오용의 역사를 거듭해 왔다. 근본적으로 결코 과학일 수 없는 창조과학의 어처구니없는 공격은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대부분의 인문사회학자와 심지어 상당수의 생물학자마저 상당히 그릇된 이해를 하고 있다.

‘종의 기원’이 출간된 것이 1859년이니 이제 거의 한 세기 반의 시간이 흐른 셈이다. 다윈의 진화론은 그 자체가 나름대로 자연선택의 과정을 거쳤다.

자연선택론은 1930, 40년대에 이른바 ‘진화적 종합’을 겪고 1960, 70년대에는 또다시 유전자의 관점으로 재무장하여 지금은 상당히 ‘진화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21세기 생물학은 지금 엄청난 변혁기를 맞고 있다. 분자생물학 만능시대를 벗어나 바야흐로 통합생물학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그동안 환원주의 일변도로 치닫던 생물학이 드디어 또 다른 종합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가능하면 모든 걸 단순한 시스템으로 만들어 분석하는 물리화학과 달리 기본적으로 위계구조의 복잡계를 다루는 생물학은 그 접근 방법이 본질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2009년이면 다윈이 탄생한 지 200년, 그리고 ‘종의 기원’이 출간된 지 150년이 된다.

미국 하버드대의 진화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다윈의 진화론을 바탕으로 하여 드디어 자연과학은 물론 인문사회과학과 예술을 한데 아우르는 ‘지식의 통섭(統攝)’이 가능해졌다고 주장한다. 다윈의 이론을 다시 한번 진지하게 공부할 때가 온 것이다.

‘종의 기원’을 읽으며 다윈의 또 다른 명저 ‘인간의 유래’(1871년)를 함께 읽을 것을 권한다. 그래야 다윈의 이론을 포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최재천 서울대 교수·생명과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