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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봉주르! 요리사관학교

입력 | 2005-05-05 17:01:00

선진 식문화와 기술을 배우기 위해 ‘요리 유학’을 꿈꾸는 이들이 많다. 열정은 기본이고 충분한 사전 준비와 외국어 능력은 필수다. 최근에는 능력을 인정받아 현지 레스토랑에서 활동하는 한국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사진제공 CIA


‘요리 유학’을 꿈꾸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의사나 억대 연봉을 받던 이들이 요리 유학을 떠나는 경우도 있다. 특히 요리 유학은 수준높은 식(食)문화와 다양한 식재료, 음식 개발을 위한 실험 정신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프랑스를 비롯해 최근 각광받는 미국과 일본의 요리 학교를 소개한다.

○ 전통과 관록의 프랑스 요리학교

봉주르(Bonjour)! ‘요리’하면 프랑스가 떠오른다. 요리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고, 이름난 요리 학교도 많다.

이 중 외국인들에게 잘 알려진 곳은 ‘르 코르동 블뢰’. 110년의 오랜 역사를 가진 이 학교는 한국 분교 덕분에 국내 인지도가 높다. 요리를 처음 배우는 이들도 수업을 따라가기 쉽고, 요리의 기본을 익히기에 좋다.

세계 각국 분교의 수업 내용은 같으나 예비 요리사들은 ‘파리 분교’로 몰린다. 파리 분교 마케팅 담당 산드라 메시에 씨는 “파리는 음식 관련 산업이 발달해 관련 경험을 풍부하게 쌓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프랑스 미식 문화의 대명사로 꼽히는‘미슐랭 가이드’의 스타 등급 레스토랑에서 최대 6개월간 인턴으로 일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 현지 취업도 가능하다. 파트리크 마르탱 부회장은 “한국인 졸업생 두 명이 미슐랭 투 스타 레스토랑인 아피시우스와 최근 새롭게 주목받는 지(Ze) 키친에 취직했다”고 소개했다.

방돔 광장의 유서깊은 리츠호텔. 고(故) 다이애나 영국 왕세자비의 연인이었던 도디 알 파예드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곳으로 세계 명사들이 자주 머무는 곳이다. 이곳은 주방 맞은편에 요리 학교 ‘리츠 에스코피에르’를 운영하고 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요리사 이력에 ‘리츠’가 들어가면 몸값이 달라진다.

한 반에 학생 수가 10명 미만이어서 학생들이 직접 ‘요리하는’ 수업이 많다. 리츠 에스코피에르를 졸업하면 최장 9개월 동안 세계 정상급인 리츠호텔 주방에서 일할 수 있다.

르 코르동 블뢰는 요리의 예술성을, 리츠 에스코피에르는 현장형 요리를 가르치는 게 특징. 신라호텔 서상호(46) 조리팀장은 “리츠에서 배운 뒤 요리가 고급스럽고 성숙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1994년 이곳에서 고급 과정을 듣고 4개월 동안 리츠 호텔 ‘에스파동’에서 일했다.

JW메리어트호텔 뷔페에서 일하는 조경(27) 조리사는 르 코르동 블뢰와 리츠 에스코피에르를 모두 거쳤다. 그는 “르 코르동 블뢰에서 초급 과정을 듣고, 리츠 에스코피에르에서 중급 과정을 듣는 게 좋다”고 말했다.

르 코르동 블뢰나 리츠 에스코피에르는 영어로 통역을 해 주는 덕분에 외국인들에게 유명하지만 프랑스인이 최고로 꼽는 학교는 프랑스 상공회의소가 운영하는 ESCF(Ecole Superieure de Cusine Fran¤aise)다.

ESCF의 교육 과정은 이론과 실기 등 모두 3년. 실기 수업은 학생들이 메뉴를 짜서 학교 식당에서 판매하는 방식이다. 육류, 생선, 건식품, 초콜릿, 아이스크림 등 재료에 따라 주방이 다르다. 익은 음식과 날재료의 출입구, 사람의 출입구도 별도로 설치되어 있다.

ESCF 출신들은 프랑스의 ‘요리 엘리트’로 유명 레스토랑에 인맥을 형성하고 있다. 학교가 초청하는 미슐랭 스타 셰프들의 강의를 듣고 안면을 튼 뒤 선배들을 통해 그 식당에 취직하는 경우가 많다. 학비가 1년에 4000유로(약 520만 원)에 불과해 국내의 대학 등록금보다 싸지만 유창한 프랑스어는 기본이고 요리사 경력이 있어야 하며 국가의 논문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이 때문에 외국인 졸업생은 소수에 불과하다. 제라르 드 마르시라크 교장은 “최근 5년간 외국인은 이스라엘인 1명, 한국인 2명이 전부”라고 말했다.


○실용교육 vs 종합교육

요리 유학을 꿈꾸는 이들에게 새로 각광받는 곳이 뉴욕의 CIA(Culinary Institute of America)다. 프랑스 미국 일본의 요리 학교를 견학한 영산대 조리학부 정구점(52) 교수는 CIA를 첫손가락에 꼽는다. 정 교수는 “ESCF의 과학적 조리와 르 코르동 블뢰의 예술요리 전통에 미국의 실용성을 합쳤다”고 평가한다. 세계 조리명장(MOF) 50여 명 중 10여 명이 CIA 교수다. CIA 동문 가운데는 국내 유명 외식업체와 요리 연구가의 2세들이 많다. 현재 한국인 재학생이 30명에 이른다.

CIA는 ‘졸업 뒤 곧장 현장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실력을 키워준다. 재학 중 최소 18주 이상 외부 레스토랑에서 현장실습(Externship)을 하고, 학생들이 매일 1000명이 넘는 학생 및 교직원의 세 끼 식사를 준비하고 서브한다.

1년에 네차례 캠퍼스 안에서 취업 설명회가 열리고, 학교 측은 체계적으로 구직 정보를 제공한다. 졸업 뒤에도 일정 기간 미국 내 레스토랑에서 일할 수 있다.

일본 요리 학교들은 요리 전반을 배울 수 있는 게 장점. 도쿄 핫토리 영양전문학교의 경우 1학년 때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중국요리와 제과 제빵 수업을 듣고, 2학년 때 이 중 하나를 골라 전문성을 키우도록 한다. 한국인 재학생은 70여 명으로 전체 유학생 가운데 절반이 넘는다. 한국에 사무실을 두고 졸업생의 취직을 알선해 주는 등 ‘사후 관리’를 해 준다.

르코르동 블뢰에서 수업을 받고 있는 학생. 프랑스 요리학교들은 전통이 깊고 식문화 인프라가 풍부해 요리 유학을 꿈꾸는 이들이 맨 먼저 고려해볼만하다.

○유학 그 이후 환상은 금물

요리 학교 졸업 이후 취업은 또 다른 관문. 직접 레스토랑을 낼 수도 있지만 취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고용 요리사’의 최고 직장은 특급 호텔. 그러나 유학파는 “들인 돈이 얼만데…”라며 성급해 하지만 단기간에 승부를 보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CIA를 졸업한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 메인키친의 이은정(35) 조리사는 “좋은 회사와 높은 연봉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꾸준히 일하면 대가가 온다”고 말한다.

현지 취업도 늘고 있다. ESCF를 졸업한 윤화영(30) 씨는 파리에 있는 미슐랭 투 스타 레스토랑 ‘레잠바사되르(Les Ambassadeurs)’에서 일하고 있다. ESCF를 1등으로 졸업한 그는 인턴 도중 발탁됐다.

윤 씨는 한국외국어대 불어과 재학 중 사진기술을 배우러 프랑스에 왔다가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요리에 매료됐다. 그는 “르 코르동 블뢰에서 기본을 익힌 뒤 인턴을 하면서 프랑스어를 배우고 경험을 쌓아 ESCF에서 공부하면 프랑스 외식업계의 주류에 들어갈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화여대 조소과를 졸업한 뒤 푸드 스타일링을 배우려다 CIA에서 공부를 마친 장진아(27) 씨는 지난해부터 뉴욕의 일식 퓨전 레스토랑 ‘노부’에서 일하고 있다. 노부는 한 달 전에 예약해야 할만큼 유명한 레스토랑. 장 씨는 현장실습을 하다가 발탁됐다. 그는 “일식을 서양인 입맛에 맞도록 대담하게 퓨전화한 마쓰히사 노부유키 사장의 실험정신을 배울 수 있어 매력적”이라고 말한다.

○요리기본-어학실력 갖춰야

유학 전 한국에서 경험을 쌓아 요리의 기본을 갖춰야 한다. 복잡한 요리 용어를 알아들을 수 없으면 수업을 따라가기 어려우므로 어학 실력도 갖춰야 한다. 래리 로페스 CIA 국제교류국장은 “유학 전 영어 실력을 많이 쌓아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핫토리 학교는 지원자에게 일본어능력시험 2급 자격증을 요구한다.

‘꿈’만 가지고 덤비면 결실을 보기 어렵다. 요리사들은 새벽부터 자정까지 쉴 틈 없고 월급이 많은 것도 아니다.

‘노부’의 장 씨는 “손님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요리야말로 진짜 예술인 것 같다”며 “요리사는 어느 직업보다 열정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파리=곽민영 기자 havefun@donga.com

▼요리에 미친 3인… “좋아하는 요리하니 행복은 내것”▼


부러움을 살 만한 직업을 버리고 요리사의 길을 택한 장정은 ‘비스트로 토크’ 대표, 노종헌 ‘로이’ 대표, 프랑스음식 요리사 정한진 씨(왼쪽부터). 강병기 기자.

박사, 의사, 억대 연봉 은행원.

부러움을 살 만한데도, 이를 걷어치우고 요리사가 된 이들이 있다. 프랑스 요리사 정한진(44), 아시안퓨전 레스토랑 ‘로이’ 대표 노종헌(38), ‘비스트로 토크’ 대표 장정은(33) 씨가 그들이다.

○ 포기할 수 없는 창조의 즐거움

정 씨는 서울대 미학과에서 박사를 수료하고 파리 8대학에서 논문을 쓰던 중 ‘미학(味學)’으로 전환했다.

“20년 동안 미학만 공부했어요. 뒤돌아봤더니 공부에 물려 있었어요. 요리나 한번 배워볼까 하고 르 코르동 블뢰에 등록했는데 하면 할수록 요리에 빠지게 되더군요.”

정 씨는 미학자와 요리사를 평론가와 예술가에 비유했다. 남의 작품을 평론만 하다가 직접 만들어내는 요리사의 색다른 매력에 매혹됐다.

노 씨는 고려대 의대를 졸업했다. 자기 사업을 하고 싶어 미국 매사추세츠주립대에서 회계학을 공부하던 중 일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요리에 눈을 떠 CIA에서 공부했다. 워커힐호텔 주방을 거쳐 지금은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다.

장 씨는 현장파.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여러 나라에서 살았던 그는 미국 버지니아 선트러스트 은행 본사에서 억대 연봉을 받았다. “연봉도 많고 인정도 받았어요. 그런데 미래가 뻔하더라고요. 책상 앞에 앉아 서류나 보는 일이 전부….”

사표를 던지고 그리스 식당에서 파트타이머로 일했다. 괴팍하지만 요리만큼은 확실히 가르친 주인 밑에서 현장 요리를 익혔다. 밀레니엄서울힐튼호텔 주방을 거쳐 지난해 서울에 소박한 레스토랑을 냈다.

○ 후회는 없다

요리를 안 했다면 지금쯤 병원장이 됐을 노 씨는 “내 일 하면서 행복하면 그만”이라며 한마디로 정리한다.

‘잘 키운 자식’들이 갑자기 요리를 하겠다고 하니 처음에는 가족들의 실망이 컸지만 지금은 든든한 원군이다.

장 씨는 “아버님이 처음에는 주변에 (딸이) 요리한다는 얘기를 안 했다”며 “식당이 알려지고 제가 행복해 하니 아는 분들을 데리고 오시더라”고 말했다.

이들은 요리사가 되기 전의 경험을 활용하기도 한다. 의대를 나온 노 씨는 “건강하고 기분 좋은 음식을 만드는 게 나의 요리 철학”이라며 “의학을 배워 뭘 먹는 게 몸에 좋은지 알고 그것이 나만의 무기”라고 말했다.

정 씨의 요리에는 학자다운 진지함이, 장 씨의 요리에는 뱅커의 꼼꼼함이 묻어난다. 정씨는 재료에 손을 덜 대면서도 고유의 맛을 살리는 요리를 최고로 친다. 장 씨는 섬세한 맛에 심혈을 기울인다.

○ 환상을 깨라

요리사는 휴일도 찾기 어렵고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일하는 ‘3D 직종’이다. 잡다한 일은 물론이고 실수하면 프라이팬으로 맞기도 한다.

여성인 장 씨는 “취미일 거다, 결혼하면 그만둘 것이다 등 편견과 맞서는 것도 힘들었다”며 “종일 서 있다가 다리의 실핏줄이 터지는 일도 많았다”고 말했다.

장 씨는 요리사를 희망하는 이들이 오면 주방에서 한 달 정도 해 보라고 권한다. 이럴 경우 절반 이상이 중도에 그만둔다.

“부모들이 무작정 요리사를 시키겠다며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경우도 있는데, 환상에 빠져 있는 듯해요. 요리사는 낭만이 아니라 현실입니다.”

곽민영 기자 havef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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