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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80그때 그시절엔]소설가 성석제와 음악다방

입력 | 2005-03-13 18:11:00

1970년대 음악다방에는 다방 전면에 유리 음악박스가 있었고 수천 장의 음반이 가지런히 꽂혀 있었으며 물에 적신 수건으로 닦은 음반을 플레이어에 얹는 DJ들이 있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1979년 여름, 처음 가 본 대구는 서울보다 훨씬 더 소비문화가 발달한 도시라는 느낌을 주었다. 특히 시내 중심가에 오디오와 음반의 종류와 질, 커피 맛, 인테리어 등의 설비, DJ의 수준이 전국 최고인 초일류급 음악다방이 서너 개 있었는데 그곳에 가서 음악을 듣고 커피를 마시면서 내 수준도 한 단계 높아지는 느낌을 받았다.

초일류보다 처지기는 하지만 그래도 서울의 웬만한 유명 음악다방보다 낫다고 자부하는 다방에 내 친구가 DJ로 일하고 있었다. 다방 전면에 유리로 만들어진 음악 박스가 있었고 수천 장의 음반이 가지런히 꽂혀 있었으며, 물에 적신 수건으로 닦은 음반을 플레이어에 얹는 DJ가 내 친구였다. 흰 피부에 곱슬머리, 훤칠한 키에 잘 생긴 그는 영화 ‘스팅’의 폴 뉴먼을 빼닮았다.

그해 겨울방학 때 서울에 올라온 그는 내가 사는 동네, 구로공단을 중심으로 한 동네 다방들을 시찰해 보더니 우리 집 근처 ‘수정다방’의 마담이 말귀를 좀 알아들을 것 같다면서 그 다방으로 가서 몇 마디 하고는 간단하게 음악박스를 접수했다.

그리고는 기왕에 있던 구질구질한 음반이며 설비를 싹 걷어치우고 다방의 인테리어도 바꾸라고 강권했다. 자신은 청계천에 가서 팝송, 샹송, 경음악, 가요, 칸초네 등 꼭 있어야 할 음반들을 수백 장-물론 해적판이 대부분이었다-을 도매금으로 사들이고 튼튼한 플레이어와 앰프도 마련했다.

며칠 뒤 복덕방 영감님들이 쌍화차나 마시러 가던 수정다방은 최고 실력의 DJ가 있는 최신 유행의 음악다방으로 변신했다. 나는 가슴을 졸이며 폴 뉴먼의 서울 데뷔를 다방 한구석에서 지켜보았다.

일상에서와는 달리 그는 사투리를 전혀 쓰지 않았다. 매력적인 저음의 목소리가 음악에 따라 빠르게 혹은 느리게 흘러나왔다. 그의 손은 음반이 꽂힌 선반과 플레이어, 앰프의 다이얼, 신청곡 쪽지를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왕래했다.

환상적 조명 속에서 흰 셔츠에 붉은 넥타이 차림인 그는 내가 봐도 홀랑 반할 만했다. 그가 쪽지를 들고 사연을 읽기 시작하면 어느 탁자에선가 억눌린 신음과 환호가 들려왔고 사이다와 주스 같은 ‘뇌물’, 또는 손수건과 꽃 같은 선물이 연방 배달되었다. 그는 이따금 나를 불러서 먹다 남은 음료수를 주었다. 첫날 내가 받아 마신 음료수의 양은 세수를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손님들 대부분은 인근의 공장에 근무하는 처녀들이었다. 처녀들을 따라온 총각들도 없지는 않았지만 처녀들의 눈과 귀는 오로지 음악박스 안에 있는 폴 뉴먼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가끔 다방에 없는 음반의 곡이 신청되기도 했다. 그럴 때 그는 DJ들 간에 전해진다는 세 권짜리 대학노트에 근거한 설명을 장황하게 늘어놓음으로써 음악보다는 그의 목소리를 듣는 데 기쁨을 느끼는 손님들을 만족시켰다.

통금이 없는 크리스마스와 제야에 ‘올 나이트’를 할 때 그는 각각 한 달치의 임금을 미리 받았고 그 밤의 대사를 인근 다방 가운데 가장 성황리에 치러냈다. 그는 수백 명의 손님들을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음반처럼 능란하게 다루었다. 한마디로 갖고 노는 것이었다.

방학이 끝나고 대구로 돌아가면서 그는 내게 그 노트를 주고 갈까 물었다. 나는 본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 비급(秘(겁,급))을 아무에게나 함부로 보여 주지 말라고 대답했다. 노트만 있으면 뭘 하겠느냐고 하지는 않았다.

소설가 성석제

○성석제 씨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능청스럽고도 맛깔스럽게 쓰는 소설가. 1960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1986년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했으며 같은 해 문학사상 시 부문 신인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94년 첫 소설집 ‘그 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를 펴냈다. 한국일보문학상, 동서문학상, 이효석문학상, 동인문학상, 현대문학상을 받았다. 시집으로 ‘낯선 길에 묻다’, 소설집으로 ‘홀림’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어머님이 들려주시던 노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