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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마당/김윤태]대학개혁, 産學협력에 초점 맞춰야

입력 | 2005-02-03 17:23:00


19세기 중반까지 영국의 대학은 신학 철학 수사학 수학만 가르쳤다. 그러나 1870년대 옥스퍼드대와 케임브리지대는 산업혁명으로 변화하는 근대 세계에 새로 적응해야 했고, 새로이 과학 역사 법학 외국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특히 케임브리지대는 1871년 캐번디시 연구소를 만들어 새로운 과학 엘리트를 육성하기 시작했다. 그 뒤 케임브리지대는 단일 대학으로서는 세계 최다인 65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19세기 후반까지 독일의 대학은 부유한 집안의 자제나 귀족 출신의 뛰어난 젊은이들을 교육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러나 산업사회의 새로운 수요를 받아들여 정부는 산업과 연구의 협력관계를 권장했고, 대학에는 연구소와 실험실이 급속하게 증가했다. ‘자유와 고독’이라는 대학의 이상은 산업체와 협력하는 ‘집단적 작업’으로 변화했다. 이 시기 이후 과학의 기술적 응용을 통한 경제발전이 대학의 새로운 사명으로 추가됐다. 미국의 기업들도 독일 모델을 받아들여 대학과 연계해 우수한 과학기관을 설립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대학개혁을 겪은 나라들은 산업혁명 시대를 주도하는 나라가 됐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대학도 산업’이고 ‘경제계의 요구와 주문에 따라야 한다’는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말이 많다. 교육을 경제논리로만 보면 기초학문이 흔들리고 전인교육이 약화된다는 우려가 있다. 일면 일리 있는 지적이다. 그러나 대학이 산업과 담을 쌓고 지낼 수는 없다. 우리나라 대학들은 산학협력을 너무 많이 해서 문제가 아니라 제대로 하지 않아서 문제다.

1980년대 미국 경제가 장기불황에 시달리고 있을 때 대학들은 기존의 학과 중심, 응용기술 중심의 교육이 급변하는 사회에 맞지 않다고 보았다. 그래서 종합적인 학문을 강조하고 인문계와 자연계의 기초학문을 강화하며 경쟁 시스템을 도입하는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여기에 정부와 기업도 막대한 돈을 쏟아 부었다. 이렇게 해서 양성된 새로운 인재들은 1990년대 미국의 정보통신산업이 급성장할 때 큰 힘을 발휘했다.

대학들 스스로가 변해야 한다. 자기 나라 대학을 믿지 못해 수만 명이 해외로 유학을 떠나고 ‘기러기 아빠’가 양산되는 데에는 우리 대학들의 책임도 크다. 경제계도 당장 써먹을 맞춤형 인재만 찾을 게 아니라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대학에 투자해야 한다. 기업들은 대학의 인문·자연계 기초학문에도 과감히 투자해야 한다. 이것이 교육의 공공성과 경제논리의 대립을 뛰어넘는 새로운 길이다. 정부도 재정지원은 없고 간섭만 많이 하는 현행 체제를 근본적으로 혁파해야 한다.

이미 일본에서는 ‘도야마 플랜’으로 국립대를 통합하고 법인화를 추진해 개혁을 서두르고 있다. 중국도 최근 33개 대학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육성하기 위한 ‘985공정’을 추진 중이다. 이웃나라의 급속한 변화에 눈을 감은 채 개혁을 지연시키면 경제도, 교육도 공멸할 수밖에 없다. 지식정보시대의 새로운 변화와 개혁을 주도하는 대학의 새로운 모습을 보고 싶다.

김윤태 건양대 초빙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