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장치가 널리 보급되면 신문사의 인쇄 시설이나 배달 시스템이 사라질 것이다. 가정에선 라디오 채널을 맞추는 것처럼 다이얼만 돌리면 새로운 뉴스를 받아볼 수 있게 된다.”
1950년대 캐나다에서 나온 한 보고서의 내용. 여기서 말하는 ‘새로운 장치’란 바로 팩스다. 집집마다 신문을 팩스로 받아보게 될 것이라는 예측은 성급했던 것으로 결론이 났다. 하지만 팩스는 보이는 것을 그대로 보낼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수십 년간 사무실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군림했다. 그 팩스가 인터넷 시대를 맞아 ‘퇴역’할 채비를 하고 있다.
▽탄생, 그리고 전성기=1842년 스코틀랜드 발명가 알렉산더 베인은 두 개의 바늘을 유선으로 연결시켜 한 쪽의 움직임을 다른 쪽에서 그대로 따라하는 장치에 대한 특허를 냈다. 이 장치는 당시 200개 단어를 보내는 데 1분 정도 걸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지금의 팩스는 문서에 빛을 비춰 반사되는 모습을 거울과 렌즈로 모아 디지털 신호로 전환해서 보내는 방식. 문서 한 장을 보내는 데 몇 초가 안 걸릴 정도로 빨라졌다.
1970년대까지 팩스는 신문사에서 사진을 보내거나 기상청에서 일기도를 보내는 데 쓰이는 등 용도가 극히 한정됐다. 본격적으로 사무실에서 쓰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말부터다.
국내에서 팩스가 처음 생산된 건 1981년. 사무용기기 업체인 신도리코가 ‘FAX3300H’라는 모델을 내놓고 ‘팩스 시대’를 열었다. 이후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가전업체에서도 팩스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쇠락=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세계 팩스 판매량은 2000년 1500만 대에서 2001년 1300만 대로 줄었다. 기업이 낸 전화요금에서 팩스 요금이 차지하는 비중도 1995년 13%에서 2004년 4% 수준으로 떨어졌다. 10년 만에 3분의 1로 줄어든 것이다.
국내도 사정은 비슷하다. 신도리코 이나영 씨는 “국내 팩스 판매량은 2002년을 정점으로 계속 줄고 있다”고 소개했다.
팩스가 쇠락하고 있는 이유는 인터넷 e메일 때문이다. e메일은 별도의 통화 요금을 낼 필요가 없다. 종이나 잉크 값도 안 든다. 팩스처럼 ‘뭐가 안 들어왔나’ 계속 살펴야할 이유도 없다.
▽팩스의 운명은?=팩스는 당장 사라질 것인가.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선 고개를 젓는다. 시골이나 저개발국처럼 아직 인터넷 사용이 불편한 곳이 있고 팩스를 써야하는 업종도 있다. 수많은 증서가 오가는 부동산업계나 서명이나 인장이 첨부된 서류를 많이 쓰는 법조계에선 당분간 팩스를 완전히 버리지 못할 전망.
그러나 장기적으로 인터넷 보안 기술이 발달하고 전자 서명이 일반화하면 팩스의 이런 장점 역시 사라지게 된다.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