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길을 나설 때마다 느끼는 것인데 새벽인데도 차량 통행량이 꽤 된다. 그래서 생각한다. 이렇게 부지런한 국민은 결코 망할 수 없다고.
참으로 힘든 한 해였다. 작년 말만큼 달력을 구하기 힘든 때도 없었다. 새해가 밝았건만 국민 다수는 희망을 노래하기보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국민의 눈물을 닦아 주는 것이 정치라 배웠건만, 현 정치권은 국민의 고통지수를 높이는 희한한 재주를 가지고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입’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은 반신반의다. 그 진정성을 쉽게 믿어 주기엔 간단치 않은 과거가 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의 진정한 변신은 대한민국 50년사를 재인식하는 것에서 시작돼야 한다. 대한민국은 정권욕에 눈이 먼 분열 세력이 세운 나라가 아니다. 많은 이들이 백범 김구를 영웅시하지만 나는 생각이 다르다. 냉엄한 국제정세를 제대로 읽지 못한 그의 비(非)현실적 정치노선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6·25 남침으로 확인됐듯이 김일성에게 주도권을 넘겨주지 않는 통일국가 수립은 애당초 불가능한 프로젝트였다. 그래서 나는 이승만의 단정(單政)노선을 이해한다. 우리의 힘으로 이룬 광복이 아니었기에 더더욱 그렇다.
산업화에 대한 평가 역시 바뀌어야 한다. 1960년대의 대한민국은 서독에서 4000만 달러(지금 환율로도 400억 원이 좀 넘는 정도다)의 차관을 도입하려는데 보증을 서 줄 데가 없어 서독에 파견된 광원과 간호사의 월급을 담보로 잡힌 나라였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를 장하게 여겨야 한다. 불꽃 속에 산화해 간 전태일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따라서 부정하고 청산해야 할 오욕의 역사가 결코 아니다.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도 남을 성공의 역사, 영광의 역사다.
자학하는 사람치고 제대로 되는 사람 없다. 자중자애하는 인간만이 성취한다고 했다. 국가공동체에 대한 태도 역시 마찬가지다. 지도자는 그 나라 역사의 빛과 그늘, 공과를 모두 껴안아야 한다. 노 대통령은 작년 6월 17대 국회 개원 연설에서 우리 현대사에서 ‘국민의 국회’는 4·19혁명 후의 제5대, 6·10항쟁 뒤의 제13대, 그리고 열린우리당에 과반수 의석을 준 제17대밖에 없다고 했다. 그 말을 통해 강조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민주화는 인정하지만 건국과 산업화에 대해서는 그럴 수 없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래서 노 대통령에게 주문하고자 한다. 이승만과 박정희가 없는 김영삼과 김대중 그리고 노무현은 탄생할 수 없었다. 건국과 호국 과정이 있었기에 산업화가 가능했고 산업화를 이루었기에 ‘불가역(不可逆)적 민주화’가 가능했다. 이 점에서 민주화만을 인정하고자 하는 단절적 역사인식은 결국 자신의 뿌리에 대한 부정으로 귀착된다. 진정 이승만과 박정희를 넘어서고 싶다면 기존질서 해체와 지배세력 교체를 위한 시민혁명을 외칠 것이 아니라, 그들이 만들어 놓은 대한민국의 현실에 두 발을 굳게 딛고 서야 한다. 이승만이 보여 준 정치적 현실주의의 토대 위에서 분단 극복을 구상할 때 진정한 자유통일의 길이 열릴 것이며, 박정희가 보여 준 경제 우선의 확고한 원칙과 집행력의 토대 위에서 제2의 도약을 꿈꿀 때 삶의 질과 사회안전망이 보장되는 선진 한국의 길이 열릴 것이다.
대통령이여, 대한민국을 사랑하자! 그러면 이승만, 박정희에 대한 ‘내재적 접근’이 가능해질 것이다.
신지호 자유주의연대 대표·서강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