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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영화로 배우는 영어…‘등푸른 활어영어’ 저자 이미도씨

입력 | 2004-12-30 15:59:00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집에서 영화를 보고 있는 외화번역가 이미도 씨. 그는 영화를 통해 영어를 재미있고 쉽게 공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강병기 기자


《‘큰맘 먹고 영어학원에 등록해놓고 몇 번 안 갔다.

한 달 전에 산 영어 소설은 10쪽도 못 읽었다.

CNN 뉴스를 본다며 앉으니 졸음만 온다….’

영어가 생존의 조건이 된 시대, 수많은 시행 착오를 거쳐 새해에는 ‘정말 영어 공부 좀 해보겠다’고 마음먹지만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

그래서 만나봤다. 최근 베스트셀러가 된 ‘이미도의 등 푸른 활어 영어’의 저자 이미도 씨를.

외화 번역가인 그는 재미있는 영화로 영어를 공부하자고 주장한다.

그에게 정말 간절하게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영어공부를 할 수 있을까요?”》

○ 영화는 최고의 영어 교재

영화 팬이라면 영화가 끝난 뒤 화면에서 올라가는 크레디트에서 ‘번역:이미도’를 수십 번은 봤을 것이다. ‘블루’를 시작으로 ‘굿윌헌팅’ ‘슈렉’ ‘아메리칸 뷰티’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를 비롯해 최신작인 ‘내셔널 트레져’까지 400여 편이 그가 번역한 작품.

그는 미군부대 통역관이었던 아버지에게 ‘맞아가며’ 영어를 배웠다. 아버지는 단어 하나를 외울 때 큰소리로 발음하면서 A4 용지 5장에 앞뒤로 빽빽하게 그 단어를 쓰게 했다.

그러면서도 영어에 대한 흥미를 일깨워주려고 그의 손을 잡고 자주 영화관에 데려갔다. 공부를 잘했을 때 아버지에게서 선물이라고 받은 것도 좋은 영어문장이었다.

그렇게 공부한 이 씨는 “영어 공부를 쉽게 하려는 생각부터가 걸림돌”이라고 말한다.

일요일 빼고 매일 1시간씩 해도 한 달이면 24시간, 미국에서 겨우 하루 지낸 것이다. 아니, 미국에서 하루 있는 것만 못하다. 죽어라고 단어를 외워도 어떤 상황에 쓰이는지는 그 문화를 알아야만 가능하기 때문.

결국 미국의 문화를 직접 체험에 가깝게 간접 체험할 수 있는 길은 현재 미국인들이 가장 많이 쓰는 말들이 나오는 영화를 보는 게 최선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더구나 영화는 재미있지 않은가.

이 씨에게 영화로 영어를 공부하는 프로그램을 짜 달라고 했더니 한 달에 한 편씩 영화를 본 뒤 그 소설이나 각본을 읽는 방법을 추천했다.

일단 영화를 정한 뒤 마음 편히 한글 자막으로 영화를 감상한다.(1일)

그 다음날 그 영화의 소설이나 각본을 읽기 시작한다.(1주일)

대형서점이나 아마존닷컴(www.amazon.com)에서 구입할 수 있다. 이 씨는 “영화를 보고나서 내용을 아는 상태에서 책을 보면 잘 읽혀 ‘앗! 영어 좀 되는데’ 하는 긍정적인 착각이 든다”고 말했다.

두 번째 읽을 때는 중요한 문장이나 단어를 외우면서 자세히 읽는다.(2주일)

그 다음에는 영어자막으로 영화를 보고 마지막으로 자막 없이 한 번 더 본다.(3일)

더 욕심을 낸다면 책 내용이 녹음돼 있는 오디오 북을 구입하거나 영화를 틀어놓고 MP3로 녹음해 이동할 때 듣는다.

영화를 고르기가 힘들다면 그가 추천한 리스트를 참조하자. 시대극보다는 지금의 미국 영어를 알 수 있는 현대물이 좋다.

○ 일주일간 따라해 보니…

그가 제안하는 학습방식을 일주일간 집중적으로 체험해 보기로 했다. 마침 영어 공부에 대해 슬슬 부담감을 느끼고 있던 중이었다.

그는 기자에게 기막힌 반전으로 유명한 ‘식스 센스’를 추천했다.

월요일 저녁, 당장 DVD를 빌려 한글자막으로 봤다. 다음날 소설을 사려고 대형 서점 몇 군데를 돌아다녔지만 책이 없었다. 결국 이 씨에게 빌렸다. 계획을 세우고 나서 미리 서점에 주문하거나 인터넷을 통해 책을 구입해 놓기를 권한다.

취재를 위해 일주일에 끝내야 하기 때문에 거의 하루 종일 읽었다. 읽는 동안 영화 장면들이 생각나 모르는 단어가 나와도 이해할 수 있었다. 어린 주인공 콜(핼리 조엘 오스멘트)이 교실에서 선생님에게 ‘말더듬이 스탠리!’라고 소리치는 장면을 떠올리며 책의 그 부분에 나온 ‘stuttering Stanley!’를 보고 사전 없이도 ‘stutter’가 ‘말을 더듬다’라는 뜻임을 알아차리는 식.

목요일부터 두 번째 읽기에 들어갔다. 연습장과 영영사전을 놓고 중요 표현을 외워가면서 읽었다. 금요일 밤이 돼서야 끝났다. 그날 밤 영어 자막으로 DVD를 봤다. 내용은 이미 알기에 자막을 읽는 데 집중했다. 자막이 생각보다 빨리 지나가 약간 좌절감이 들었다.

토요일 밤, 드디어 무자막에 도전했다. 책에서 본 문장들을 배우가 발음할 때, 단어들이 연결되면서 실제로 어떻게 들리는지 신경 써서 들었다. 대사가 귀에 ‘쏙쏙’ 꽂혔다. 우물거리듯 말하는 콜의 말까지 90% 이상이 잘 들려 놀라웠다.

그날 밤, 자려고 불을 끄니 자꾸 영화 속 유령의 모습과 콜의 대사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I see dead people. Walking around like regular people. They only see what they want to see. They don’t know they’re dead.(죽은 사람들이 보여요. 보통 사람들처럼 걸어 다녀요. 그들은 자기가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봐요. 자신들이 죽은 줄도 몰라요.)”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졌다. 어쨌든 실험은 성공이다.

▼이미도씨가 추천하는 영어공부 하기 좋은 영화▼

초급 : 터미널, 아이 엠 샘, ET, 스탠 바이 미

중급 : 식스 센스, 러브 스토리, 포레스트 검프, 섈 위 댄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레인 맨, 유 캔 카운트 온 미

고급 : 아메리칸 뷰티,굿 윌 헌팅, 아웃 오브 아프리카, 잉글리시 페이션트,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

▼암기하면 좋은 영화 속 명대사 'BEST 10'▼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