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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2004뉴스]서울 대중교통체계 개편

입력 | 2004-12-23 18:11:00


《서울은 반 년째 ‘대중교통 혁명’을 겪고 있다. 올해 7월 시행 초기 ‘패닉(Panic)’이라는 단어가 등장할 정도의 극심한 혼란을 거친 ‘교통 실험’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

서울시의 대중교통 체계 개편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다소 엇갈린다. 하지만 상당수 지방자치단체는 물론 선진국 도시들이 벤치마킹할 정도로 초기에 비해 지금은 긍정적 목소리가 갈수록 확산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시행 초기 드러난 서울시의 준비 부족과 과욕, 시민들의 무신경한 대응, 눈앞의 것에만 치중하는 언론의 보도 태도 등은 반성해야 할 대목이다.》

▽초기 혼란은 불가피했나?=대중교통 개편 첫날인 7월 1일 아침. 새 교통카드 단말기가 곳곳에서 ‘먹통’이 됐다. 중앙버스전용차로에선 버스들이 뒤엉키면서 ‘버스 기차’를 방불케 했다. 기존 노선번호가 권역별로 완전히 바뀐 탓에 시민들은 타야 할 버스를 몰라 우왕좌왕했다. 버스정류장 곳곳에서 시민들의 원성이 들끓었다.

“서울시 ×들, 왜 쓸데없는 짓을 해서 시민들을 골탕 먹이는 거야.”

서울시가 대중교통 개편에 착수한 것은 이명박(李明博) 시장 취임 한 달 뒤인 2002년 8월부터. 시 관계자는 “당시는 교통체계를 첨단시스템으로 바꾸기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버스업계의 공멸’을 막기 위해 모험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회고했다.

마국준(馬國準) 서울시도심교통개선반장은 “버스 승객이 해마다 줄고 있었고 교통난을 뚫을 희망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며 “전임 시장 때도 대중교통 개편이 논의됐으나 저울질만 하다 끝난 반면 이 시장은 욕먹을 각오를 하고 밀어붙인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시가 준공영제 도입, 요금체계 및 버스차로제 변경 등 예전부터 논의됐던 각각의 개편안을 한꺼번에 추진하겠다고 나선 것은 이 시장의 저돌적인 리더십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래서일까. 시 관계자들은 시행을 앞두고 “두고 보라”며 자신만만해 했다. ‘청계천 복원’에 이어 ‘교통 개편’이라는 두 번째 도전에 여론도 대체로 기대를 거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뚜껑을 열자 상황은 딴판이었다.

▽준비 부족 누구 탓이었나?=이 시장은 시행 나흘째인 4일 “시민에게 불편과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며 정치 입문 이후 처음으로 공식 사과를 했다.

시중에는 “서울시가 시장 취임 기념일인 7월 1일을 ‘이명박 기념일’로 만들기 위해 충분한 준비 없이 무리수를 뒀다”는 의혹 섞인 비난이 팽배했다. 청계천 복원공사 역시 취임 1주년인 2003년 7월 1일에 착공됐었다.

당시 교통 개편에 깊이 관여했던 시 관계자의 전언.

“2년 연속 시장 취임 기념일에 큰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을 우연의 일치로 봐달라고 호소하긴 어렵다는 걸 안다. 하지만 실제론 이 시장은 오히려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으면 연기하자’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실무부서는 자신감이 넘쳐 있었다. 올 봄에 시행할까 생각했지만 ‘4·15총선용’이라는 얘기를 들을까봐 방학이 시작되고 교통량이 줄어드는 7월로 정한 것이다. 물론 간부들 마음속에 시장 취임일에 맞춰 보려는 욕구가 있었을 것이라는 점도 충분히 추측할 수 있다.”

교통국 관계자는 “당시 만반의 준비를 했다고 자신했다. 사실 교통카드 오작동은 미처 예상도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돌이켜 생각해 보면 당시의 혼란은 예고된 변화에 전혀 대비하지 않은 시민들에게도 일정 부분 책임이 없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행정 관청은 물론 거의 모든 언론이 시행 전에 변화 내용을 무수히 소개했는데도 상당수 시민들이 관심을 갖지 않았다는 것이다.

언론도 널뛰기만 할 뿐 사안의 본질을 짚는 데는 소홀했던 게 사실이다. 서울과 수도권의 환승 체계 미비, 버스 안내판 부실, 요금 인상 등 혼란을 예고하는 대목이 무수히 많았는데도 본보를 포함해 대부분 언론들은 이를 간과했다.

대중교통 개편은 ‘교통혁명’에 버금가는 근본적인 뼈대와 체질의 변화였지만 언론은 시행 전에 구조적인 부작용이나 준비가 부족한 대목은 없는지를 찬찬히 짚어보지 않았다. 막상 시행 후에는 눈앞에 보이는 혼란상에만 돋보기를 갖다대느라 체질 변화가 가져올 장기적 성과는 미처 보지 못했다.

▽미완성 교통 혁명의 미래=속단할 수 없지만 새로운 교통문화의 조짐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중앙버스전용차로를 이용하는 시내버스의 속도(17∼21km/h)는 개편 이전 버스 평균 속도보다 5km/h 이상 빨라진 것으로 서울시 자체 조사 결과 나타났다.

이 조사에 따르면 또 무료환승제 덕분에 12월 현재 대중교통 환승객 수는 186만여 명으로 1년 전에 비해 80% 이상 늘었다. 증가세로 돌아선 대중교통 이용객은 10월부터 하루 1000만 명을 넘어섰다.

하지만 노선과 배차간격 조정, 중앙버스전용차로의 추가 설치, 서울∼경기∼인천을 잇는 수도권 교통체계 통합 등 과제는 여전히 수북이 쌓여 있다.

김경철(金敬喆) 서울시 대중교통연구단장은 “승용차 이용에 드는 사회 전체의 총비용이 연간 3조7000억 원에 이르는 반면 대중교통은 3000억 원밖에 들지 않는다”며 “획기적인 변화를 시작하는 데 성공한 만큼 초기의 시행착오를 교훈삼아 세밀한 밑그림을 그리고 보완해 나가는 데 만반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이진한 기자 likeday@donga.com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개편방향 옳았지만 준비부족 반성”▼

“교통 개편 첫날 버스 정류장에 나가 봤더니 교통안내 도우미와 버스 운전사조차 버스 번호를 모르고 있더군요. 결과적으로 준비가 부족했던 거죠.”

서울시 대중교통개편을 일선에서 총지휘한 음성직(陰盛稷·사진) 교통정책 보좌관은 23일 “시행 초기 어느 정도 혼란은 예상했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회고했다.

교통문제 담당 연구원 및 기자 출신인 음 보좌관은 공무원(서울시 교통관리실장)으로 변신한 지 한 달 만인 2002년 8월부터 대중교통 개편을 준비했다. 300여 명의 공무원이 야근을 밥 먹듯 하며 2년 가까이 매달렸다.

하지만 “버스가 승용차보다 빨라지고 첨단 교통카드로 다양한 혜택을 받는 ‘대중교통 전성시대’가 열릴 것”이라던 그의 기대는 7월 1일 아침 여지없이 무너졌다.

당연히 정상적으로 작동할 것으로 믿었던 교통카드 단말기에 오류가 발생하자 망연자실했다. 하루 수만 통의 민원전화가 폭주했다. 그는 그날 오후부터 교통카드 제작업체인 ㈜한국스마트카드에 자리를 잡고 단말기 프로그램 보완작업을 했다. 버스들이 운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새벽마다 기술자들과 함께 운수업체를 찾아다니며 프로그램을 깔기도 했다.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는 이명박 서울시장 뒤에 서서 ‘결국 실패하면 책임을 지겠다’고 수없이 되뇌었다. 그렇게 6개월이 흘렀다.

음 보좌관은 “아직도 사소한 오류들이 발생하고 수시로 보완 중인 미완 상태”라며 “하지만 예전에는 ‘초보 환영’을 붙이고 다닐 정도로 구인난이었던 버스업계가 최근에는 이력서가 넘칠 정도로 인기를 얻는다는 얘길 듣고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교통 개편 초기에 쏟아졌던 비난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부분의 언론이 교통 개편은 바람직한 방향으로의 변화라며 호응해 줬다”며 “시행 초기의 혼란은 명백한 시의 잘못이며 언론의 비판은 당연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