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방어 가능할까환율이 연일 크게 떨어지면서 은행 창구에는 달러를 원화로 바꾸려는 고객이 늘어나고 있다. 22일 인천국제공항에 있는 한 은행 지점에서 직원들이 달러를 세고 본점에 연락해 환율 움직임을 체크하는 등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인천=원대연기자
한국은행이 22일 돈을 찍어 달러 매입에 나섰지만 원-달러 환율의 급락(원화가치의 급상승)을 막는 데는 역부족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전문가들은 원-달러 환율의 하락은 전 세계적인 달러화 가치 하락에 따른 것이므로 한국 외환당국의 독자적 개입이 큰 효과를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외환시장 개입의 주도권이 재경부에서 한은으로 넘어감에 따라 환율정책이 통화정책과 물가에까지 부담을 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원-달러 환율 추가 하락 막겠다’는 의지의 표현=그동안 외환시장 개입의 주도권을 잡고 있던 재경부의 외환시장 안정용 국채 발행한도가 거의 바닥나면서 시장 참여자들은 한국 정부의 시장 개입 여력이 떨어졌다고 판단했고 원화 환율 하락은 더욱 가속도가 붙었다.
실제로 올해 외환시장 안정용 국채 발행한도는 18조8000억원이지만 이 가운데 17조원은 이미 사용했고 1조8000억원이 남아 있다. 하지만 2001년에 발행돼 이달 말에 만기가 돌아오는 3년 만기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 1조2000억원을 상환해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외환시장 안정용 국채는 모두 소진된 것이나 다름없다.
이에 따라 재경부는 이날 ‘실탄’을 직접 만들 수 있는 한은에 외환시장 개입 강도를 높여 줄 것을 요구한 것이다.
국채 발행 한도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국회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외환시장 상황이 너무 급박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부작용은 없나=한은이 강력한 의지를 갖고 환율 방어에 나설 경우 통화정책까지 영향을 받게 되고 물가상승 압력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한은이 시장에서 달러를 사들이면서 원화를 풀게 되고, 한은에서 푼 돈이 시장을 돌면서 통화량 증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통화안정증권을 발행해 통화를 흡수할 수 있다지만 이렇게 되면 이자 지급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실제로 환율이 급락한 10월 이후 이미 통안증권 발행 잔액이 급증했다. 19일 현재 통화안정증권 발행 잔액은 133조1000억원으로 9월 말에 비해 한달반 새 8조4000억원이나 늘어났다.
박원암(朴元巖) 홍익대 무역학과 교수는 “지금까지는 재경부가 외환시장에 개입해 왔는데, 한은이 개입하면서 앞으로는 환율정책이 통화정책에까지 본격적인 영향을 미치게 됐다”며 “외환시장 안정용 국채 발행을 통한 시장 개입은 인정하더라도 발권을 통한 본격 개입은 다소 문제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효과는 제한적=민간 전문가들은 당장 환율 하락 속도를 늦추는 일은 필요하지만 효과는 미지수라며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한은 관계자들 역시 약(弱)달러 기조가 전 세계적인 현상이기 때문에 개입해도 ‘약발’이 잘 먹히지 않는다고 토로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정영식(鄭永植) 수석연구원은 “원-달러 환율은 엔-달러 환율과 동조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며 “엔-달러 환율이 급락하는 상황에서 한국이 독자적으로 개입한다고 해도 환율 하락세를 막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타이밍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블룸버그 통신의 칼럼니스트인 윌리엄 페섹은 이날 칼럼을 통해 “현재의 달러 약세에 따른 아시아 통화권의 강세는 일시적인 것이 아닌 추세적 흐름”이라며 “앞으로 이런 현상은 지속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신치영기자 higgledy@donga.com
이강운기자 kwoon90@donga.com
공종식기자 k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