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뉴 라이트, 침묵에서 행동으로]대안세력 되려면…

입력 | 2004-11-14 18:41:00



《‘꼴통 보수’와 ‘꼴통 진보’ 등 양 극단의 이념을 비판하고 중도 보수의 가치를 내세운 뉴 라이트 운동에 대한 평가는 일단 긍정적이다. 보수 진영의 분화 등 우리 사회의 진정한 이념적 발전을 가져올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특히 정치적 중간 세력을 키움으로써 대화와 타협의 정치문화를 진전시킬 촉매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구보수세력과의 차별화, ‘운동’의 차원을 넘어 각 분야의 변화를 이끌어 낼 세력화 여부, 국민적 지지에 대한 평가는 아직 유보적이다. 본보는 일주일에 걸친 뉴 라이트 기획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전문가 대담을 마련했다. 대담은 이내영 교수가 사회를 겸하면서 전상인, 김호기 교수가 참여한 가운데 11일 저녁 동아일보사 14층 회의실에서 이뤄졌다.》

▽이내영 교수=노무현 정부의 국정운영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은 시점이어서 뉴 라이트 운동이 큰 관심을 끄는 것 같다. 그 개념과 실체에 대해 얘기해보자.

▽김호기 교수=1970년대 서구에서 국가의 실패에 따른 신보수, 신자유주의라는 흐름이 등장했다. 우리 사회에서도 신자유주의 흐름이 3김 시대를 거치면서 형성돼가고 있다. ‘박정희주의’를 넘어서서 21세기에 걸맞은 새로운 보수주의 담론을 만들어야 한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등장에 대해 보수주의자들이 ‘이러다가 보수는 집권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위기의식을 가진 게 뉴 라이트 등장의 또 다른 이유이다.

▽전상인 교수=사회 혼란, 극심한 경제위기, 현 정권의 정체성과 지향점에 대해 국민들이 2년 전보다 훨씬 회의를 갖고 비판의식을 갖고 있다. 이런 때에 지식인들이 계속 침묵한다는 것은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라이트’는 반드시 오른쪽의 의미가 아니라, 옳다는 의미도 된다. 이것은 새로운 보수가 아니라, 한국 역사와 지성사에 최초의 보수인 듯하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의 보수이념은 국가라든가 남북 관계, 냉전체제에 의해 주어진 것이지, 자발적 자생적으로 고유의 철학 이념을 정리해본 적이 없다.

▽이=우파가 뉴 라이트 운동으로 들어선 것도 있지만 대선 때 노무현 후보를 찍었거나 개혁정치를 기대했던 사람들이 실망해서 돌아선 경우도 많다. 진보세력에 대한 실망감이 새로운 안정적 개혁을 요구하는 측면이 크다. 30, 40대 중 지지세력에서 떨어진 사람들의 현실인식이 뉴 라이트와 유사하다. 뉴 라이트는 개혁 연합의 와해현상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김=현 정부를 좌파적으로 보는 것은 오해가 있다. 경제 영역에선 신자유주의적이다. 사회문화 영역에선 사회민주주의적 성격이 두드러진다. 한국 사회가 이런 상황에 놓인 주요 원인은 세계화 때문이다. 세계화가 수출한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는 분배를 양극화시키는 한편 진보세력들이 정치적 권력을 획득하게 한 결과를 낳았다. 현 정부는 신성장동력을 확충하고 사회적 분배도 강화하고 싶은데, 이미 신자유주의화 된 시장경제 안에선 정책수단을 갖기 어렵다. 사회복지정책을 위한 물적 토대도 취약하다. 이런 구조적 조건들이 정치 기반을 약화시켰다.

▽전=현 정부의 특징은 책임 전가를 너무 잘한다는 것이다. 보수 언론, 한나라당의 책임과 과거 유산, 세계화 등 구조적인 요인 때문이라는 건데 설득력이 별로 없다. 현 정부는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기득권을 뒤엎으면서 필요에 따라 좌우를 왔다 갔다 한다는 점에서, 조롱적인 의미의 실용주의 정부로 부르고 싶다.

▽이=현 정부는 경제위기의 심각성을 모르고, 분배와 평등주의적 색채가 다분히 있다. 과거사 문제에는 아직도 민주화 운동의 열정이 그대로 지배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너무 과거 지향적이다. 외교 안보정책에서는 현실주의가 부족하다. 북한 인권과 체제에 대한 비판을 혼동하고 있다. 기득권 세력을 대체하는 것이 정국 운영의 방향이 될 수는 없다. 한편 뉴 라이트는 정부에 대한 비판과 동시에 기존 보수세력에 대한 비판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새 대안으로서의 미래가 없다.

▽김=현 정부가 내세운 것은 개혁과 통합인데, 통합의 가치를 소홀히 한 것은 사실이다.

▽전=실제로 한 것을 보면 개혁과 통합이 아니라 변혁과 분리 같다. 갑자기 권력을 쉽게 잡은 한계다. 현 정부를 좌파로는 보지 않지만, 집권세력이 이념좌표를 좌파로 위치시키려는 것 같다. 노 대통령이 “합리적 보수, 개혁적 보수, 별놈의 보수를 해봐도”라고 하는 것은 보수에 대한 저주다. 이해찬 총리가 보수정당과 언론에 악담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뉴 라이트 운동이 생기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하다.

▽김=수구 보수와 뉴 라이트를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수구 보수와 뉴 라이트의 이념적인 거리는 좌파와 우파의 거리보다 훨씬 더 크다. 박정희주의와 신자유주의가 이념적 대척점에 있다. 박정희주의는 권위주의를 중시하고 경제영역에 대한 국가 역할의 우위, 국가주도 발전전략, 가족 공동체를 추구했다. 반면 신자유주의는 시장의 자유와 경쟁, 개인주의를 중시하고 있다. 따라서 뉴 라이트가 전체 보수우파를 대표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전=희망적인 것은 뉴 라이트 그룹이 기존 보수세력보다 젊고, 변화와 개혁에 대한 열망이 강하고, 미래지향성과 대외개방성이 있다는 점이다.

▽이=수구보수 세력이 시장과 자유민주주의를 이야기하려면 철저한 자기반성이 전제돼야 하는데 아직 그걸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뉴 라이트의 문제제기는 의미가 크다. 현 정부의 단절적 개혁에 불안해하고 화합적 개혁을 추구한다는 점, 기득권 세력의 공과를 인정하면서 미래지향적인 개혁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뉴 라이트의 차별성이 있다. 이는 시민운동의 방향을 잡는 데에도 긍정적인 기여를 할 것이다.

▽전=뉴 라이트가 대안세력이 되려면 수구 보수와 분명한 거리를 두면서 교육 문화 학문 등의 영역에 천착해야 한다. 정치적 힘을 많이 가진 구보수세력과의 거래가 없어야 한다.

▽이=진보진영에서는 뉴 라이트 운동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김=뉴 라이트의 슬로건이 얼마나 시민사회에 뿌리를 내릴지는 미지수이다. 다만 긍정적 영향은 있다. 우리 사회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려면 제대로 된 보수와 진보가 쌍두마차를 이뤄야 한다. 뉴 라이트가 제대로 설 때 진보 진영의 개혁도 가능하다. 그러나 뉴 라이트는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프로그램이 취약하다. 이게 없으면 중도세력을 끌어안을 수 없다.

▽전=차제에 진정한 진보랄까 합리적인 진보랄까, 뉴 라이트의 카운터파트가 나왔으면 좋겠다. 뉴 라이트와 진보 간의 반노-친노 게임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진보 쪽에서도 80년대로부터의 해방 등을 진지하게 고민해주길 바란다.

▽이=노무현 정부의 실패는 정권만의 실패가 아니다. 한국사회의 굉장히 뼈아픈 현상이다. 뉴 라이트의 역사적 의미는 보수세력들의 새로운 이념적 지향을 만들고, 노 정부나 진보적 시민운동이 지나친 역사의 단절, 또 자기 확신에 매몰돼서 이분법적으로 과거를 부정하고 자기만 옳다고 보는 독선에서 벗어나도록 문제제기를 한 것이다.

▽김=서구는 사실 복지정책의 일정 부분은 보수당 정부에 의해 이뤄졌다. 뉴 라이트 운동이 자리를 잡으려면 그 정도까지 나아가야 한다.

▽전=정치 세력화를 말하는 것 같은데, 사회 각 부문의 뉴 라이트 그룹들의 연대에는 회의적이다. 우파 지식인들은 진보측에 비해 모래알이다. 또 ‘80년’ ‘386’ ‘광주’라든가 하는 특정한 정치적 상징이 없어 산발적일 가능성이 크다.

▽이=뉴 라이트의 정치세력화는 정치권의 보수와 진보가 얼마나 자기 혁신과 개혁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그게 되면 뉴 라이트는 지식인 운동으로 남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 정치 세력화할 가능성도 있다.

▽김=뉴 라이트 운동은 시민사회 정치사회 지식인사회 등 3개영역에서의 순수성을 유지해야 한다. 정치권 진입을 위한 수단으로 변질되면 일시적인 것으로 끝날 것이다. 분리 속의 연대, 연대 속의 분리의 원칙이 잘 지켜져야 한다.

▽전=뉴 라이트 운동이 반노 운동으로 끝나면 이는 국가적으로도 불행한 일이 될 것이다.

▽이=열린우리당의 문제는 이념적인 것이 아니라 무능과 정책적 방향의 불명확성, 리더십 부재, 한풀이 정책 등이다. 노 대통령이 뉴 라이트의 충고를 받아들이고 정책에서 수정해 나간다면 발전적인 진전을 이룰 수 있다.

정리=윤종구기자 jkmas@donga.com

최호원기자 bestiger@donga.com

▼참석자 약력▼

●전상인(全相仁)

△1958년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미국 브라운대 사회학 박사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 이내영(李來榮)

△1958년생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미국 위스콘신-매디슨대 박사

△동아시아 연구원 정치사회 여론조사 소장

● 김호기(金皓起)

△1960년생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독일 빌레펠트대 사회학 박사

△미국 UCLA 초빙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