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 지도부는 25일 이부영 의장(가운데)이 주재한 상임중앙위원회의에서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에 따른 대책을 논의했다. 천정배 원내대표(오른쪽)는 26일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통해서 ‘4대 법안’ 입법을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밝힐 예정이다. -김경제기자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25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제동이 걸린 수도 이전의 대안을 구체적으로 내놓지는 않았다.
헌재 위헌 결정에 관해 언급한 부분은 연설문의 총 25쪽 중 1쪽을 조금 넘는 분량에 그쳤고, 표현도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문구의 행간(行間)을 통해 노 대통령이 전하려 한 메시지는 ‘수용’이었다.
▽위헌 이유에는 이견 있지만, 결론은 수용한다=시정연설에서 노 대통령은 “헌재의 결정이유에 대해 다양한 의견과 평가가 있다”며 위헌 결정 사유에는 이견이 있음을 완곡하게 내비쳤다.
특히 노 대통령은 헌재 결정 내용 중에서 ‘수도’에 관한 사항이 관습헌법에 해당한다고 인정하더라도 이를 변경하기 위해선 성문헌법에 규정된 개헌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판시한 부분을 아직도 의아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1일 헌재 결정 선고 직후 “처음 듣는 이론”이라는 반응을 보인 것도 이 대목을 가리킨 것이었다고 한다.
25일 국회에서 열린 한나라당의 의원총회에서 박근혜 대표, 김덕룡 원내대표(오른쪽부터) 등 지도부가 의원들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이날 의총에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비판과 함께 최근 정국에 대한 당 지도부의 미온적 대응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았다.-서영수기자
그러나 노 대통령은 “결론의 법적 효력에 대해서는 누구도 부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제3인칭’ 화법을 통해 헌재 결론을 수용한다는 뜻을 나타냈다. 흔쾌하지는 않지만, 마땅한 불복수단이 없어 법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는 위헌 결정을 달리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정면돌파보다는 우회하는 대안 찾겠다=노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헌재의 결론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에서’ 국가균형발전을 변함없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수도 이전이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 혁신도시 건설 등과도 밀접히 연관돼 있는 만큼 서로 연관된 정책 전체를 종합적으로 재검토해 대안을 내놓겠다고 했다.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국민투표 실시나 개헌 추진과 같은 정공법을 택하지 않고 우회로를 찾겠다는 얘기였다. 노 대통령은 이날 수석비서관 및 보좌관 회의에서 “호흡을 길게 하자. 관습도 바뀌는 것이고 판례도 바뀌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도 “그렇지 않아도 나라가 시끄러운데, 어떻게 개헌 카드를 내놓겠느냐. 노 대통령도 같은 생각이다”고 전했다.
이날 민정수석실에서 “청와대와 국회 외의 다른 국가기관의 이전은 개헌절차 없이 법률적 행위만으로 가능하다”고 노 대통령에게 보고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특히 새로운 대체법안을 마련하지 않더라도 지난해 말 국회에서 통과된 국가균형발전특별법의 ‘공공기관 지방 이전’ 조항에 근거해 중앙행정기관의 이전은 추진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다만 청와대는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특별행정도시’ 문제와 관련해 △중앙행정기관의 이전 범위 △공공기관 지방 이전 계획의 수정 여부 △기업도시 및 혁신도시 건설계획과의 연관성 등을 전체적으로 재검토한 뒤에야 지방균형발전전략의 새로운 그림을 내놓을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윤종구기자 jkma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