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산하의 상당수 위원회에 심의 및 결정 대상이 될 수 있는 민간 기업체 임직원들이 위원으로 위촉돼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20일 본보 취재팀이 23개 중앙 행정기관 산하 238개 위원회의 올 8월 현재 민간인 위원 명단을 입수해 조사한 결과 이 중 23개 위원회에 해당 위원회의 권한 및 기능과 직간접적인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민간업체의 임직원이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위원의 임기가 2년이라는 점을 고려해 2002년 8월 현재의 명단도 분석해 본 결과 당시엔 179개 위원회 중 16개 위원회에 민간업체 임직원이 참여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이런 위원회 등 정부의 주요 심의 및 의사결정기구에 이해관계가 있는 인사의 참여를 방지할 수 있도록 ‘이해 충돌(conflict of interest) 회피’ 제도의 도입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심사 대상이 심사위원으로=건설교통부 소속 고속철도건설심의위원회는 고속철도 건설에 수행되는 각종 기술과 공법이 적정한지 등을 심의하는 기구다. 그런데 이 위원회에는 고속철도 공사를 수주한 7개 건설회사의 임직원들이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신공항 건설 사업의 건축·건설기술과 교통영향 등을 심의하는 건교부 소속 신공항건설심의위원회에도 영종도 공항 관련 건설사업을 수주한 4개 기업의 임직원들이 위원으로 포함돼 있다.
부산 신항만 현장 관련 사업을 수주한 한 건설회사의 임직원은 해양수산부 소속 신항만건설심의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이 위원회는 신항만 건설 사업의 건축·건설기술, 교통영향 등에 관한 주요 사항을 심의한다.
최근 1년 동안 철도시설공단과 인천국제공항공사, 인천국제공항, 철도청 등으로부터 수차례 감리 용역을 따낸 건설 감리업체 U사는 임원 중 무려 6명이 특별건설심의위원회, 도로정책위원회, 중앙지하수관리위원회, 민간투자사업심의위원회, 중앙건설기술심의위원회 등 건설 관련 정부 산하 위원회 5곳에 참가하고 있다.
이는 비단 현재의 정부 위원회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화장품 원료기준의 제정과 화장품의 규격기준, 안전성과 유효성에 관한 사항 등을 심의하는 식품의약품안전청 소속 화장품심의위원회의 경우 2002년 당시 무려 13명의 위원이 관련 업체 임원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철도 관련 부품의 품질 적합 여부를 판정하는 철도청 소속 품질보장심의위원회는 2002년 당시 심의위원 가운데 12명이 철도 관련 부품 등을 생산하는 기업체 임직원이었다.
▽‘이해 충돌’ 우려=이처럼 정부 위원회에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기업체 임직원들이 참여하는 것은 제도적 허점과 ‘이해 충돌 회피’의 중요성에 대한 담당 공무원들의 인식 결여 때문이다.
현재 정부 위원회의 기능과 구성을 규정하는 법령과 시행령들은 위원의 자격 조건을 ‘해당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 해당 업무에 대한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자’로 규정하고 있을 뿐 ‘이해 충돌 회피’에 관한 조항은 없다.
또 행정자치부가 2년마다 정부 위원회의 목적과 활동을 감사하고 있지만 이는 위원회의 난립을 막기 위한 것일 뿐 위원의 적격성 여부는 감사 대상이 되지 않고 있다.
위원회를 담당하고 있는 상당수 부처 직원들도 민간업체 임직원의 참여에 대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 품질 관련 심의위원회를 담당하고 있는 공무원은 “위원회에는 대학교수 등 다른 위원들도 많기 때문에 위원회 활동이 공정성을 잃을 우려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 전직 위원회 담당 공무원은 “건설분야의 경우 평소 친분 관계 등 인맥이 적지 않게 작용한다”며 “업체 임직원이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기업이 그렇지 못한 기업보다 유리할 수 있다”고 밝혔다.
참여연대 투명사회팀 이재근 간사는 “민간 기업의 의견을 듣거나 경험을 얻기 위해 전문성을 갖춘 민간 업체 임직원을 위촉할 수 있지만 직접적인 이해관계에 있는 기업의 임직원을 위원으로 위촉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해 충돌 회피란▼
사익과 공익이 서로 충돌할 경우 공익이 침해되고 공정한 직무수행이 방해받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충돌 자체를 사전에 막자는 개념이다. 최근 입법 추진과정에서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공직자주식백지신탁제도는 이 개념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대부분의 선진국도 이 개념을 다양한 제도로 도입하고 있다. 한국은 1981년 제정된 공직자윤리법과 2003년 제정된 공무원행동강령에 부분적으로 반영돼 있다.
민간업체 임직원이 참여하고 있는 주요 정부 위원회위원회주요 업무기업인 참여 현황국방부
특별건설심의위원회국방부 발주 공사의 공사설계 및 기술 타당성 등 심의80개 기업 87명 참여건교부 고속철도건설
심의위원회고속철도 사업의 건축 및 건설기술 등 심의17개 기업 18명 참여식약청
화장품심의위원회화장품 원료 기준 등 심의3개 기업 3명 참여
(2002년에는 11개 기업 13명 참여)건교부
신공항건설심의위원회신공항 사업의 건축 및 건설기술 등 심의11개 기업 11명 참여
이현두기자 ruchi@donga.com
이완배기자 roryrer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