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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 교수의 Really?]바다로 가는 배설물, 육지생물 죽여

입력 | 2004-10-19 18:50:00


깨끗한 수세식 화장실이 널리 보급된 요즘은 가끔씩 재래식 ‘뒷간’의 냄새가 그리울 때도 있다. 사실 수세식 화장실만큼 우리의 생활을 크게 바꿔놓은 것도 드물다. 멀수록 좋다던 화장실이 집안으로 성큼 들어와 버린 것도 이 덕분이다.

수세식 화장실의 배설물은 정화조에 보관됐다가 배관이나 차량을 통해 도시 외곽의 위생처리장으로 운반된다. 위생처리장에서는 냄새나는 유기물을 미생물 등으로 분해해 하천이나 바다로 흘려보낸다. 물이 좀 많이 들기는 하지만 집안에서 고약한 냄새도 몰아내고, 파리와 같은 해충도 막고, 기생충 감염도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되니 그야말로 ‘일석삼조’인 셈이다.

그런데 우리에게 편리한 수세식 화장실이 자연의 입장에서 보면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위생처리장에서 분해해 버리는 유기물은 본래 자연의 순환 과정을 통해 육상 식물의 영양분으로 쓰여야 하는 소중한 자연 자원이기 때문이다. 그런 유기물이 분해돼 바다로 흘러가 버리고 나면 여간해서는 육지로 되돌아오지 않는다. 바다로 흘러가 버리는 유기물이 많아지면 결국 육지에 살 수 있는 생물의 총량은 줄어들 수밖에 없게 된다. 우리가 소비하는 식량이 엄청나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런 자원의 손실은 결코 무시할 수가 없다.

시골에서는 재래식 화장실을 고집하면서 사람의 배설물을 퇴비(거름)로 활용하는 생태 마을도 생겨나고 있다. 미생물이 많은 부엽토를 이용해 퇴비의 냄새를 없애는 방법도 동원되고 있다. 그렇다고 수세식 화장실을 포기하며 엄청난 규모로 커버린 도시 전체를 생태 마을로 바꿀 수는 없는 일이다.

또 한편에서는 천연 퇴비와 천적만을 이용해 ‘무공해 유기 농산물’을 재배하는 움직임도 있다. 하지만 천연 퇴비로 돌아오는 자원은 많지 않다. 수세식 화장실을 통해 발생하는 천연 자원의 손실은 심각한 숙제로 남게 된다. 이제 우리 스스로가 자연의 순환 과정에 일으킨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때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 duckhwan@sog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