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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卷四. 흙먼지말아 일으키며

입력 | 2004-10-17 17:59:00

그림 박순철


패왕이 한왕 유방을 달리 보기 시작한 것은 유방이 먼저 관중으로 들어가 진나라의 항복을 받아낸 다음이었다. 관중으로 들어가려면 함곡관을 넘어야 한다는 통념을 깨고 유방이 남양(南陽)으로 길을 돌아 무관(武關)을 넘은 것부터가 놀라운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진 제국의 심장부에 바로 뛰어든 유방이 격렬했을 그 마지막 저항을 꺾고 마침내 진왕(秦王) 자영의 항복을 받아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충격과 함께 은근한 시샘까지 느꼈다.

그러다가 유방이 제 장수를 시켜 함곡관을 닫고 자신의 진입을 막으려 들자 패왕은 살의(殺意)가 들 만큼 그 컴컴한 속셈이 의심스러웠다. 관중에 든 지 두 달 만에 유방이 거둬들인 인심도 패왕의 경계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홍문의 잔치에서 보여준 비굴함은 다시 패왕을 방심하게 했다. 거기다가 한왕(漢王)을 받아들인 유방이 잔도(棧道)를 불사르고 파촉(巴蜀) 한중(漢中)으로 들어갈 때는 천하대세가 그걸로 모두 결정된 듯 보였다.

하지만 고도(故道)를 통해 파촉 한중에서 나오면서 유방은 다시 흉물스러운 야심가로 떠올랐다. 그리고 한달도 안돼 삼진을 평정하여 관중을 차지함으로써 더욱 밉살맞으면서도 정체모를 괴물같이 되어갔다. 그러다가 함곡관을 나와 중원으로까지 손을 뻗치자 홍문(鴻門)의 잔치 때 죽이지 못한 게 뼈저리게 후회되는 천하쟁패의 난적(難敵)으로 다가왔다.

가슴에 품은 미움과 분노대로라면 패왕은 한왕 유방이 한중을 나왔을 때 이미 관중으로 대군을 내어 결판을 봤어야 했다. 그런데 장량의 말에 속고, 의제를 둘러싼 서초(西楚) 내부의 형세가 뜻 같지 않아 머뭇거리는 사이에 전영이 먼저 일을 내고 말았다. 멀리 관중에 있는 유방의 칼이 설령 염통을 겨냥하고 있다 해도, 당장 가까운 산동에서 콧등을 갈겨대는 전영을 버려둘 수는 없었다.

“못된 놈. 지독한 놈….”

패왕은 다시 그렇게 중얼거리고 혀를 차며 죽은 전영을 떠올렸다.

돌이켜 보면 지난 정월에 있었던 성양(城陽)의 싸움은 어지간한 패왕에게조차 끔찍했다. 전영이 임치(臨淄)에서 성벽을 높여 기다리지 않고 거꾸로 천리 길을 마중와 준 것은 고마웠으나, 먼 길을 벼르고 와서 그런지 전영이 이끈 제군(齊軍)은 처음부터 만만치 않았다. 패왕의 이름과 서초(西楚)의 기치만 보아도 벌벌 떨며 손을 들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오히려 패왕이고 서초의 군사라 더욱 싸울 만하다는 듯 기세를 올렸다.

거기다가 패왕이 데리고 간 군사는 소문처럼 그리 많지 않았다. 전영을 얕봐 강동병(江東兵) 3만에 용저(龍且)와 종리매(鍾離매)가 이끄는 군사 3만이 전부였다. 그 바람에 성양에 이른 패왕은 전군을 들어 닷새나 성을 짓두드렸지만 떨어뜨리기는커녕 문루(門樓)하나 제대로 그슬지도 못했다.

“안되겠다. 아부(亞父)께 글을 올려 군사를 떠 뽑아 올리게 하라. 빨리 전영을 사로잡고 팽성으로 돌아가야 하니, 되도록 많은 군사를 이끌고 아부께서도 함께 오시도록 해야 한다.”

마침내 패왕은 그렇게 명을 내려 범증에게 증원을 요청했다. 범증도 중원으로 뻗어 나오기 시작한 한왕 유방을 꺾는 일이 더욱 급함을 잘 알고 있었다. 빨리 제나라를 평정하고 서쪽으로 갈 양으로 팽성을 지키는 군사들 중에서 굳세고 날랜 5만을 가려 뽑았다. 그리고 다음날로 팽성에 남아있던 계포와 함께 그들을 이끌고 성양으로 떠났다.

글 이문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