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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산책]‘우리 형’… 뒤늦게 불러보는 “형…”

입력 | 2004-10-07 16:33:00

사진제공 진인사필름


같은 고교, 같은 반에 다니는 연년생 형제. 선천적으로 입술이 파열된 채 태어난 형 성현(신하균)은 내성적인 성격에 ‘내신 1등급’, 잘 생긴 동생 종현(원빈)은 입에 욕을 달고 다니는 ‘싸움 1등급’이다. 사사건건 형만 편드는 어머니(김해숙) 때문에 가장 가까우면서도 먼 사이가 된 형제는 인근 지역 최고의 ‘퀸카’ 미령(이보영)에게 동시에 사랑을 느낀다.

‘우리 형’(감독 안권태)은 한 마디로 너무 늦게 태어난 영화다. 이 작품은 뛰어난 형 때문에 불가피하게 존재감이 약해지는 동생을 연상시킨다. ‘친구’의 강렬하고 고통스러운 후일담, ‘태극기 휘날리며’의 뜨거운 형제애, ‘말죽거리 잔혹사’의 낭만적인 삽화도 겹쳐 떠올리게 한다.

문제는 ‘우리 형’에 이런 요소들이 모두 있지만 강도가 약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영화는 가깝지만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하고, 재미있지만 ‘세다’는 느낌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만약이란 설정은 무의미하겠지만 앞선 작품들의 잔상이 없었다면 ‘우리 형’은 훨씬 강렬하게 관객을 끌어들이는 영화가 됐을 것이다.

‘우리 형’은 교차할 수 없는 평행선을 그린 형제의 성장기를 다뤘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시시콜콜한 에피소드를 걷어내면 남는 것은 결국 ‘엄마’와 ‘형’, 두 단어다.

형제를 갈라놓은 것은 처음에는 가장 소중했던 어머니의 사랑, 나중에는 청춘의 열병처럼 다가온 첫사랑이다. 성현에게 쏠린 어머니의 사랑과 종현이 차지한 미령의 사랑 등 불평등한 사랑은 형제간 불화의 근원적인 원인을 제공한다. 영화는 형제와 여성이 얽힌 ‘일종의’ 삼각관계를 차례로 거치면서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진부한 말을 증명하듯 형제애를 확인하는 과정을 그렸다.

하지만 ‘우리 형’의 약점은 엄마, 형과 동생, 첫사랑, 교복과 싸움 등 익숙한 복고 코드들이 도돌이표를 찍듯 다시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적 상황은 90년대로 설정돼 있지만 극중에서는 관객의 향수를 겨냥한 것인지는 몰라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시대배경이 모호하게 묘사돼 있다. 교복과 첫사랑에 대한 스케치는 ‘말죽거리 잔혹사’를, 비극적 결말은 ‘친구’를 연상시킨다.

또 하나. 이 작품의 시작이자 끝은 형제다. 하지만 영화는 형제의 대립각을 지나치게 작고, 쉽게 해소되는 것으로 설정해 스스로 작품의 동력을 잃어버린다. 그래서 영화의 갈등은 사소한 것처럼 보이고 중반 이후에는 비슷비슷한 에피소드들을 늘어놓으면서 제자리걸음을 치게 된다.

다만 이 작품의 가장 큰 상업적 포인트인 ‘원빈 효과’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의 대사.

“내가 하면 ‘짝퉁’도 진짜 같고, 니가 하면 진짜도 티가 안 난다는 거다.”

‘태극기…’ 이후 첫 작품인 이 영화에서 그는 경상도 어투에 껄렁껄렁한 ‘땜통’ 헤어스타일의 종현으로 변신해 가능성을 보였다.

8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 가.

김갑식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