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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0일과 꿈/송성일]귀농 7년… 즐거운 푸념

입력 | 2004-10-06 18:50:00


하고 싶다는 말들은 하면서도 쉽게 하지 못하는 ‘귀농’을 한 지도 7년이 지났다. 지지부진하던 내 삶을 바꾸고 싶다는 열망 하나로, 호미 한번 잡아 본 적 없는 사람이 하루아침에 보따리를 쌌다.

처음에는 허리 굽은 노인네도 농사지어 먹고사는데 이 나이에 육신 멀쩡한 놈이 밥이야 굶겠느냐는 오기로 버텼다. 내가 키운 농산물이 공판장에 가서 어떤 푸대접을 받든 상관없이 봄에 씨를 뿌려 싹을 틔우고, 파릇파릇 작물을 키우는 재미에 힘든 줄을 몰랐다. 3, 4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나 스스로 농사꾼이 되어가는 것을 확인하며 느끼는 희열은 경제적 궁핍이나 육체적 고단함을 잊게 하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 사는 일이 오기와 자기만족에 기대서만 버틸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시간이 좀 더 흐름에 따라 한국 농촌이 처해 있는 이런저런 문제들에 나도 봉착하기 시작했다. 농사는 힘들고, 잘 짓기는 더 어려웠고, 농업노동에 대한 사회적 평가는 보잘것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그것이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웃의 공통된 문제라는 것이었다.

“눈코 붙은 놈들 다 나가고 우리 같은 찌꺼기만 남아가지고….”

밭두렁에 둘러앉기만 하면 내뱉는 푸념에 진절머리가 나기 시작할 즈음, 오기도 일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궁리를 거듭하면서 나 혼자 세상과 부대끼지 않고 밥 벌어먹고 살자는 안일한 욕심을 버렸다. 마을 일에 나서기 시작했고, 몇 안 되는 젊은 이웃들과 마을의 새로운 비전을 찾아 나섰다.

이제 농촌이 단순히 도시에 먹을거리를 공급하는 역할을 벗어나, 도시민의 정서적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향수의 제공처 역할을 더욱더 중요하게 하게 될 것이라는 데 주민들과 인식을 같이했다. 그리곤 주위를 둘러보니 우리 비나리 마을에는 누구에게라도 감동을 줄 수 있는 아름다운 자연과 온전히 보존되어 온 전통적인 삶의 모습이라는 밑천이 있었다.

그 밑천을 가지고 올해까지 3년째 분투한 끝에 ‘관북녹색농촌체험마을’과 ‘청량산 비나리 정보화마을’을 일구었다. 그리고 올봄 ‘비나리 산골미술관’이라는, 작지만 알찬 문화공간을 열었다. 지역주민을 위한 문화공간이면서, 나아가 도시민과 우리 농민을 잇는 문화적 가교 역할을 하게 될 비나리 산골미술관은 개관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의외로 많은 방문객을 받았고 실패에 대한 초기의 불안을 어느 정도 씻어낼 수 있었다.

올여름 아무것도 없는 산골 마을에 가가호호 컴퓨터가 보급되고 인터넷이 들어왔다. 외부인을 볼 수 없던 산골 마을에 낯선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떼거리로 몰려다니는 아이들의 소리가 넘쳐났다. 아직 경제적 소득을 낳기에는 한참 멀었지만 마을 주민들의 푸념이 바뀌었다. “차들 때문에 경운기 치워 주느라고 일을 못하겠다.”

큰 삶은 아무나 가능하지 않지만 작지만 의미 있는 삶은 누구에게나 가능하다고 본다. 내가 사는 작은 산골 마을에서 찾은 역할을 수행하는 것, 그것이 내 인생의 성공 여부를 판가름할 것이다.

▼약력▼

1963년 생으로 서울대 철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뒤 서울에서 직장생활, 출판사 운영 등의 일을 하다 1997년 9월 경북 봉화군 명호면 비나리 마을에 정착해 화가인 아내 류준화, 딸 화와 고추농사를 지으며 www.greengochu.com을 운영하고 있다.

송성일 귀농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