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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황호택/놀라운 ‘서프라이즈’

입력 | 2004-07-06 18:40:00


인터넷상의 정치 사이트는 대부분 양극화돼 외부인의 접근을 거부하는 ‘게토(ghetto)’가 돼가고 있다. 정치적 성향이 같은 네티즌들이 모여 성벽을 높이 쌓고 다른 시각의 글을 허용하지 않는다.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다른 글을 멋대로 끌어다놓고 난도질을 예사로 한다. 그러더라도 참는 게 좋다. 그런 사이트에서 멋모르고 댓글을 달았다가는 집중포화를 받고 맥없이 물러나기 십상이다.

인터넷 시대의 정치적 분리현상은 심각하다. 종이매체 세대는 보고 읽는 매체가 비슷해 어느 정도 대화가 통했다. 그러나 인터넷 세대들은 정치적 견해를 공유하는 사이트에 찾아들어가 자기의 입장을 강화하는 글을 읽고 쓰는 습관에 익숙해져 있다. 스스로 어느 편인지를 정하면 인터넷을 이용해 같은 사람들로 주위를 둘러싸는 일이 쉬워졌다.

정치적 게토에 편입된 사람들은 점점 반대편 사람들과 접촉할 기회를 잃어간다. 정치적 게토에서는 세상일을 재는 잣대, 기울기를 측정하는 수평(水平)이 달라 심판은 없고 오직 내편 네편만 존재한다. 국가원로들도 정치현상에 관해 코멘트 했다가는 ‘국민 모두’로부터 존경받기를 포기해야 할 판이다.

진보적 문화평론가 진중권씨가 민주노동당의 ‘비판적 지지단체’라고 스스로 자리매김한 ‘진보누리’ 사이트에서 ‘서프라이즈(seoprise)’를 향해 화살을 날렸다. ‘수익구조도 없는 조그만 사이트가 사세를 확장하고 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을 먹이는 이적(異蹟)이 어떻게 가능한지….’

자세히 들여다보면 서프라이즈에도 수익구조는 있다. 4·15총선 때는 열린우리당 후보들의 홍보용 동영상을 제작해 3억원의 매출을 올렸다고 한다. 대기업의 배너광고도 떠 있다. 인터뷰 코너는 정부여당 인사들의 ‘개혁 담론’ 일색이다. 이런 서프라이즈를 ‘인터넷 언론’이라고 불러야 할지 정치권력의 외곽 지원단체라고 해야 할지 아리송하다. 서프라이즈도 ‘개혁’으로 포장하지 말고 진보누리처럼 스스로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밝히는 게 떳떳하지 않겠는가.

미국 뉴욕타임스의 데이비드 브룩스(David Brooks)는 최근 정보화시대가 가져온 정치적 분리에 관한 칼럼을 연이어 썼다. 30년 동안 두 배로 늘어난 대학졸업자들이 고교졸업자들에 비해 이데올로기 지향적이고 파당적이라는 견해다. 고등교육을 받고 정보화된 민주당과 공화당의 열성 지지자들은 다른 정당 소속의 대통령을 참을 수 없어 기회만 있으면 끌어내리려고 한다는 것이다.

현재 미국의 대통령 선거 이슈는 이라크전쟁 하나뿐이다. 한국이 대통령 탄핵 하나로 총선을 결판냈듯이 미국 대선도 이라크전쟁으로 승패가 갈릴 것 같다. 브룩스는 이 같은 정치적 분리와 투쟁을 내전(內戰)에 비유했다. 그는 교육받은 계층에서 내전이 없어진다면 미국 사회가 훨씬 덜 양극화될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도 총성 없는 내전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점이 있다면 미국에서는 자기가 어느 편에 서 있다고 해서 다른 편을 개혁하겠다고 덤비지는 않는다. 부인의 취직 청탁으로 논란을 빚은 서프라이즈의 대표가 사퇴했다. 누가 누구를 개혁하겠다는 건지 모를 세상이다.

황호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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