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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만나는 시]박성룡,“황소와 소년”

입력 | 2004-06-27 17:57:00


황소와 소년

박성룡

어린 소년 하나가

황소 세 마리를 끌고 시골길을 간다.

몸집도 소년보다 몇 곱절 크고,

힘도 소년보다 몇 곱절 세어 보이지만

황소들은 그 소년에게 기꺼이 순종한다.

순한 짐승에 순한 사람의 관계이다.

낙일의 시간

서쪽 하늘은 곱게 불에 타고,

산자락들은 차차 검은 빛을 띄며,

그러나 언덕빼기 황토밭길은 아직 환하다.

황소와 소년이 사는 마을은 어디쯤 있는 것일까.

앞산 뒷산 언덕 너머에서 푸른 연기만 피어오를 뿐,

마을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흰 동정의 분홍빛 저고리를 입은 소년은

검정 무명 바지를 입었다.

-시집 ‘풀잎’(창작과비평사) 중에서

순한 짐승에 순한 사람들, 죄다 쇠고삐 끌고, 염소 떼 몰며 어디로 가 버렸는지 몰라. 깜장 돼지 ‘오래오래-’ 몰고, 토종닭 ‘후여-’ 날리며 모두 어디로 갔을까.

소들의 수명은 본디 서른 살가량인데, 요즘 소들의 평균 수명은 세 살이 고작이란다. 일거리를 현대식 농기계들에 빼앗기고, 오직 인간의 먹을거리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소가 수명껏 늙는 것은 ‘낭비’가 되었다. 한시바삐 ‘무게’가 되어야 ‘경제적’이다. 비좁은 우리에 갇혀 지내다 명대로 못살고 팔려나가는 것들이 소들뿐이겠는가? 약내 풍기는 독한 짐승들 먹으며 모진 사람들 더욱 모질게 제 수명만 늘려 간다.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오만한 ‘인권’을 뭇 목숨붙이들의 ‘생명권’으로 재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지만, 새로울 것 없다. ‘사람’과 ‘짐승’과 ‘물건’을 다 함께 존중하고 모시던 그 마음 우리에게 있던 것들이다. 다만, 서둘러 그 순한 짐승과 순한 사람들 앞산 뒷산 너머로부터 찾아와야 할 때다.

반칠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