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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카페][책의향기]‘…삼국지 죽이기’ 펴낸 이형근씨

입력 | 2004-06-25 17:15:00

저자 이형근씨는 요즘 한국에 필요한 인물로 팀워크에 강했던 오나라의 모사 노숙을 꼽았다.권주훈기자 kjh@donga.com


“왜 ‘삼국지’의 수많은 사람들 중 조자룡과 관우, 제갈공명만 사랑 받을까요. 혹시 유명 작가들이 해석해놓은 인물상을 자신의 해석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쾌도난담 삼국지 죽이기’(미토스북스)는 삼국지 등장인물들에 대한 ‘인물평’이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수많은 영웅호걸들을 모사(謀士·참모), 군주, 무장의 세 유형으로 나눈 뒤 현실적 인물로 되살려낸다.

이 과정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인물상은 부서진다. 장판파에서 10만 대군을 헤집고 유비의 젖먹이 아들을 구해낸 조자룡은 국가에 대해 맹목적 충성을 다하는 ‘국가주의의 안드로이드(인조인간)’다. 화웅, 안량, 문추를 베고 무신(武神)으로 추앙받는 관우는 ‘자만심의 화신’이다. 전지전능해 보이는 제갈공명은 사실은 자신이 지리(地理)를 아는 곳에서만 승리했을 뿐이며 인재를 감별하는 능력도 부족했다.

이처럼 도발적인 주장을 펼친 저자 이형근씨(31)는 서울 중구 남산동 서울타워 내에 있는 한정식집 ‘풀향기’의 사무직원이다.

그는 97년부터 인터넷 삼국지 동호회에서 ‘나그네’라는 필명으로 삼국지를 재조명해왔다. ‘나그네의 삼국지 쾌도난담’이란 인기 블로그도 운영하고 있다. 이번 책은 그가 다음카페 삼국지 동호회와 자신의 블로그에 연재해온 글에서 인물평만 모은 것이다.

“정비석, 박종화, 이문열, 황석영은 물론이고 고우영의 만화삼국지까지 국내에 출간된 삼국지는 다 찾아 읽었어요. 같은 책을 여러 번 읽기보다 다양한 삼국지를 읽다보니 남들이 해놓은 해석이 아니라 내 나름대로 읽어보자는 생각이 들었죠.”

‘쾌도난담∼’은 현재의 시각에서 과거의 인물을 재단한다. 제갈공명과 사마중달의 경쟁을 놓고는 “라이벌과 싸워 이기는 길은 그보다 오래 살아남는 것”이라고 할 만큼 현실주의적 냄새가 물씬 풍긴다.

그가 ‘삼국지’에서 가장 좋아하는 인물 유형은 모사다. 창칼을 부딪치는 싸움보다는 머리싸움이 더 현실적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런 맥락에서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인물은 조조의 모사였던 곽가다.

“곽가는 조조 앞에서도 침을 뱉고 욕을 할 만큼 괴팍했지만 자신이 작전계획을 세운 전투는 단 한 차례를 빼고 모두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현실에서 저는 얌전한 회사원이지만 언젠가 곽가처럼 큰소리칠 수 있는 그런 모습을 꿈꿔보는 거죠.” “제 책을 읽은 독자가 스스로의 논리로 스스로의 삼국지를 새로 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유명 저자의 삼국지를 죽였을 때 자신의 삼국지가 살아나는 법이니까요.”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