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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최준호/삶의 거울, 연극

입력 | 2004-06-18 18:34:00


대한민국의 영화가 질적 양적으로 대중흥기를 맞고 있다. 몇몇 TV 드라마 시청률도 역대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 두 분야의 기초가 되는 예술인 연극은 왜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이런 가운데도 각 지방자치단체가 마련한 연극 축제들은 호황을 누리고 있는 것 같다. 이를 연극과 축제 활성화의 시작으로 보아야 하나.

연극의 침체는 우선 연극의 특성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 영화나 TV는 대중 또는 군중을 모두 카메라의 눈을 따라가게 한다. 동시에 많은 장소에서 상영될 수도 있고 또 언제든지 재생이 가능하다. 하지만 연극은 결코 대규모 군중을 만날 수도 없고, 대중을 한 가지 시선으로 몰고 다니지도 않는다. 다만 대중 가운데 극히 제한된 개개인과 만나고, 그 개인의 수를 늘려 가고자 하는 예술이다.

연극의 관객들은 열린 공간에서 각자의 시선으로 때로는 주제에, 때로는 인물에, 때로는 사건에, 때로는 시청각적인 아름다움에 몰두하며 자신의 인생과 관련지어 생각해 본다. 연극 관객은 개인적인 반응을 통해 공연을 더 살리기도 하고, 침체시키기도 하며, 동시에 곁에 있는 다른 관객들에게도 영향을 끼친다. 웃음 울음 감동 지겨움 몰입 등 관객의 반응과 행동이 동일하게 재생될 수 없다는 점이 공연의 변화에 기여하는 것이다. 즉 공연의 필수 요소인 관객 개개인을 최대한 배려하는 예술이 바로 연극이다.

배우 한 사람 한 사람의 숨결, 빛 한 줄기, 소리 한 줌조차 같은 공간에 있는 관객의 오감을 두드린다. 거기에는 우리의 인생이 압축돼 있어 관객의 가슴과 머리에 직접 가 닿는다. 그런 연극의 매력은 느껴 보지 않는 한 설명이 구차할 뿐이다. 그런데 우리 국민 대다수는 어려서부터 일상 가까이에서 연극을 경험할 기회가 지극히 적어 수많은 유행성 소모성 자극보다 연극이 멀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연극예술가가 가난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대단히 현실적이기도 하다. 우선 대부분의 연극극장이 100석 안팎의 소극장이어서 한 달 동안 아무리 관객을 채운다 해도 5000만∼6000만원이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원금’을 회수하는 일조차 어렵다. 공연의 수명이 길어질 수 있도록 공연장을 늘리고 특히 당장 300∼600석짜리 극장 몇 개라도 세우는 일부터 시작한다면 ‘빈곤의 악순환’은 한결 풀기 쉬워질 것이다.

다행히도 전국의 여러 지방자치단체가 마련하는 연극 축제에는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 축제의 넘치는 에너지와 정선된 작품 덕택에 일정 수준의 성과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대개는 일회성 이벤트에 그친다. 질적 양적 경영상의 발전을 이루지 못해 미래는 불안하다. 게다가 지자체는 축제의 성과를 일상에서의 문화 예술 활성화와 그 향수권 회복에 연결시키려 하지 않고 행사를 통한 민심 확보라는 달콤한 과실에 탐닉하고 있으니 말이다.

축제는 연극처럼 공동체에서 뿔뿔이 흩어진 시민을 숨 막히는 경쟁과 기계적인 현실에서 벗어나게 하면서 동시에 현실에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숨구멍과도 같은 존재다. 축제와 연극은 참여자로 하여금 소모적으로 지치게 하지 않으면서 즐거움과 현실에 대한 성찰, 새로운 시각을 함께 느끼게 해 일상으로의 복귀를 싱그럽게 하는 소금과 같은 존재다.

최준호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연극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