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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0일과 꿈]김동광/문학과 과학 ‘잡종’의 행복

입력 | 2004-06-16 18:43:00


지금까지 살아 온 여정으로나 현재 하고 있는 일로 보거나 나는 분명 ‘잡종(雜種)’이다. 대학 초년까지는 문학 이외에 다른 일을 하리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다. 당시 유신과 긴급조치라는 광풍에 휩쓸려 지금은 공원이 된 서대문에서 몇 달을 보낼 때까지도 조금 길을 돌아 문학 수업을 충실히 하는 것이려니 했다. 억지로 끌려갔던 군 시절 빼앗기고 되사기를 반복했던 김수영 시인의 산문집 ‘시여, 침을 뱉어라’는 내 유일한 위안처였다. 그렇지만 하 수상한 시절은 내가 문학으로 복귀하는 것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인천과 서울을 오가면서 노동운동으로 청년시절을 보내다 우연히 과학과 인연을 맺었다. 자연계열 친구들과 ‘잠깐’ 호구지책으로 시작했던 교양과학서 번역 작업이 그 계기였다. 이런 과정에서 나는 문득 세계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창문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동안 내가 세상을 인식하던 문학과 운동이라는 창문 이외에도 자연과학이라는 창문이 하나 더 열린 것이다. 양자역학의 선구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김용준 번역)와 같은 책은 “이 세계가 이해 가능한 곳이며 우리가 세계를 설명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을 제기해주었다. 결국 문학과 과학은 모두 이 세계를 기술(記述)하는 방식이며 그 바탕에서 궁극의 물음을 공유하고 있었다.

내가 그 후 번역을 넘어 과학 저술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마흔 살에 다시 대학원에 들어가 과학사회학을 공부하게 된 것도 그런 작은 깨달음 덕분이었을 것이다. 이 분야는 과학기술학이라 불리는 간(間)학문적 접근 방식에 속한다. 그동안의 문과 이과 분류에서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잡종 학문이라는 뜻이다. 이 접근에서 과학은 문화로 이해된다. 결국 내가 선택한 학문도 잡종인 셈이다.

나의 뿌리 깊은 잡종성은 여러 모로 힘을 발휘한다. 그중 하나가 과학적인 글쓰기에 대한 나름의 의미 부여다. 과학저술이라 불리는 이 글쓰기 영역은 흔히 어려운 과학을 쉽게 풀어주는 과학대중화로 좁게 이해되었다. 그렇지만 잡종성인 나는 과학저술이 내가 살고 있는 시대와 사회, 즉 세계에 대한 진지한 관여의 행위로 본다. 그래서 글쓰기가 쉽지 않지만 그 덕분에 쓸데없는 책을 내지 않아 열대우림을 보호할 수 있으니 이 또한 좋은 일 아닌가.

잡종성의 또 하나의 장점은 비평이다. 잡종은 찰스 스노가 말했던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두 문화’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어느 하나를 그 자체로만 보지 않는다. 따라서 잡종이 세상에 대해 견지하는 태도는 기본적으로 비평적 관점이다. 내가 지금 과학기술에 대한 시민참여를 주장하는 시민운동을 하고 있는 것도 그동안 내가 세상에 대해 취해 온 이런 자세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여하튼 나는 문학비평이 가능하듯 ‘과학비평(science criticism)’도 가능하다고 믿는다. 스무 살 앳된 문학 소년의 꿈이 오래고 긴 길을 에둘러 새로운 자리를 찾은 것일까.

김동광 참여연대 지식과학센터 소장

약력 :1957년생으로 고려대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했으며 1990년까지 노동운동에 몸담았다. 그 뒤 ‘과학세대’라는 과학 번역 저술 기획 집단에서 활동했으며 올해 고려대에서 과학사회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인간에 대한 오해’ ‘기술의 진화’ 등의 역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