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100여명에 불과한 작은 농촌마을에 생긴 흉물스러운 ‘폐기물 산’은 불량업자와 공무원, 마을 주민과 지역환경단체 회원, 사이비 기자 등 관련자들의 ‘총체적인 부패’가 만들어낸 합작품이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부패 고리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전형인 셈.
업자는 4년 동안 폐기물을 공공연히 불법 매립했고 관련자들은 수시로 업자를 찾아가 돈을 받아먹으며 국토와 하천이 오염되도록 방치했다. 불법 매립으로 업자가 얻은 이득은 20억원이지만 원상복구에는 30억원이 들어간다.
▽뻔뻔한 관련 공무원=포천시청 공무원 김모씨(37)는 지도점검을 핑계로 ㈜신북환경개발 사업장에 직접 찾아가 수시로 돈을 받았다. 그는 주택구입 자금으로 6500만원, 카드빚 상환 명목으로 3500만원을 요구하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포천시청의 다른 공무원은 포클레인 준설 작업 중 채취한 바위 2개를 회사 현판용으로 사용하라며 150만원에 강매했고, 또 다른 공무원은 부하 직원의 아버지가 재배한 포도가 판매에 어려움을 겪자 70상자를 140만원에 떠넘기기도 했다.
▽‘공포의 노란 빈대’=마을 주민 조모씨(69·농업)는 신북환경 직원들 사이에서 ‘공포의 노란 빈대’로 불렸다. 노란색 스쿠터를 타고 수시로 사업장에 나타나 돈을 뜯어갔기 때문. 조씨는 2001년 1월부터 올 3월까지 무려 77차례에 걸쳐 이 업체에서 2160만원을 뜯어냈다. 그는 “아들에게 승용차를 사줘야 한다”며 한 번에 300만원을 뜯어가기도 했다고 검찰은 전했다. 마을 이장 조모씨(44)는 “점점 높이 매립되고 있는 게 뭐냐”며 겁을 주는 수법으로 모두 180만원을 갈취했다.
▽사이비 기자와 환경단체 회원, 경찰도 가세=S환경신문 기자로 행세한 김모씨(61·구속)와 A일보 포천시청 출입기자인 김모씨(49·지명수배), J환경신문사 사장 유모씨(56·지명수배) 등은 취재 수첩과 카메라를 들고 수시로 사업장에 나타나 불법 매립을 기사화하겠다며 겁을 줬다. 이들은 각각 280만∼690만원을 받아 챙겼다.
주민 김모씨(50)와 이모씨(59)는 환경감시단 마크가 찍힌 복장과 모자를 착용한 채 사업장에 나타나 “폐기물 매립이 주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심각한데 신경을 많이 써야겠다”고 겁을 줘 각각 160만원과 80만원을 받았다. 이들은 산림보호지도요원증, 명예환경감시원증, 기자증, 자연보호지도위원 등 신분증 3, 4개도 갖고 다녔다고 검찰 관계자는 전했다.
서울 서초경찰서 형사반 경장 이모씨(38)의 경우 신북환경 사장 최모씨 등을 호송하던 중 포천시청 계장 이모씨가 내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이씨에게 전화해 수사 상황을 알려준 혐의가 드러났다.
황진영기자 bud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