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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삶]이병철/몸을 돌보듯 땅을 돌봅니다

입력 | 2004-05-03 18:51:00


새봄에 무더기로 피어나 온 골짝과 들녘을 눈부시게 채우던 그 꽃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어느새 산하는 초록으로 물들고 저무는 봄에 나는 몸앓이를 한다.

감기 기운이 있던 차에 생명평화탁발순례를 따라 남해안으로, 지리산 자락으로, 제주도로 겹쳐 돌아다녔더니 감기가 깊어졌다. 사람들은 나더러 독감에 걸렸다고 하는데 감기가 독해서 독감이라 했는지 목이 잠기고 쉴 새 없이 흐르는 콧물과 식은땀과 오한으로 무척 힘들었다. 보기에 딱했는지 집사람은 웬만해선 병원에 가지 않고 약도 먹지 않는 줄 뻔히 알면서도 이번엔 제발 약을 좀 먹어 보라고 성화다.

왜 몸이 아픈가. 감기는 질병인가. 그리고 이른바 질병이란 게 과연 의약(醫藥)으로 치유될 수 있는 것이냐는 문제에 대해 내 나름의 생각은 이렇다. 몸이 아픈 건 우리 자신이 자연성을 잃어버렸거나 왜곡된 탓으로, 달리 말해서 지금의 내 삶의 방식이 자연의 본성에서 벗어나 바르지 않기 때문에 나타나는 증상이란 것이다. 그런 까닭에 건강과 치유 또한 삶의 방식을 자연에 맞도록 바르게 회복하는 데에서 이뤄질 수 있다는 생각이다.

어쨌거나 여느 때보다 심하게 감기 몸살을 앓으면서 몸에 대한 생각을 보다 깊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좋은 체험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앓는다는 것은 몸을 제대로 느끼기 위한 것이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몸이란 무엇인가. 내 몸에 실타래처럼 뒤얽혀 있는 것 같던 사념의 끈들이 며칠 앓는 동안 하나씩 풀려나가는 듯싶더니, 생각이 텅 빈 것처럼 여겨지는 순간에 몸 그 자체에 대한 어떤 느낌이 깨어난다. 생각으로서가 아니라 ‘이것이 내 몸이구나’ 하는 생생하고 구체적인 느낌이다. 몸앓이를 통해 얼핏 몸의 실체를 느꼈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생각해 보면 이 몸이 있어 지금 이렇게 내 존재가 있다. 몸은 이 존재의 드러난 모습인 것이다. 이 몸이 나라고 하는 존재 그 전부는 아닐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이 몸을 떠나서는 지금의 이 존재 또한 없다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 이 몸이란 것을 주의 깊게 느껴 보면 그 자체로 자연임을 알 수 있다. 이 몸이란 자연의 요소로 이뤄져 있을 뿐 아니라 자연에 의해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몸과 자연이라고 하는 것과의 경계는 어디인가. 우리의 몸을 넓혀 가면 그것이 곧 자연이고, 나와 분리되어 있다고 인식해 온 저 자연을 구체적으로 축소해 오면 거기에 이 몸이 놓여 있다. 그런 점에서 몸에 대한 바른 인식은 자연에 대한 바른 인식에 닿아 있고, 이 몸을 잘 느끼고 잘 돌보는 일이 곧 자연을 잘 느끼고 잘 돌보는 일과 둘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사람의 몸을 치유하기 전에 먼저 신음하고 있는 땅을 치유하라는 경구는 이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생태적 삶, 자연과 조화되는 삶이란 이 몸과 이 자연이 둘이 아님을 알고 그렇게 사는 삶이 아닌가 싶다. 자연으로서의 이 몸을 제대로 잘 돌보고 이 몸, 이 존재의 근원으로서의 자연에 잘 따르는 삶이 그것이다. 저무는 이 봄에 이렇게 몸앓이를 하는 것은 여태껏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하고 말로만 ‘농사’ 짓고 생각으로만 ‘생태적 삶’을 살아 온 탓이 아니겠는가.

이제 몸을 추슬러 들로 나서야겠다. 그게 자연인 몸에 제대로 따르는 길이 아닌가 싶다.

이병철 전국귀농운동본부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