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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마당]손연기/사이버 공간에도 ‘웰빙’ 심자

입력 | 2004-04-15 18:52:00


말 많던 ‘인터넷 실명제’도 사실상 유보된 가운데 이번 총선이 막을 내렸다.

익명성을 악용한 사이버 공간의 불법 선거운동을 막기 위해 도입된 ‘인터넷 실명제’가 이번 총선에서 제 기능을 수행하기 어렵지 않겠느냐는 관측은 진작부터 있었다. 행정자치부나 신용정보기관의 데이터베이스와 연동해 실명 확인을 하기가 쉽지 않고, 주민등록번호 생성기 등을 이용한 ‘차명 침입’의 차단도 어렵기 때문이다.

이번 실명제 파동의 보다 근원적인 문제는 급격하게 진화하는 인터넷의 특성에 과연 현행법이 제대로 대처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당국이 정치참여 통로로서의 사이버 공간의 속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느냐는 아쉬움마저 든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에 정책자문을 하는 빅토르 마이어 쇤베르거 하버드대 교수는 최근 서울을 방문, 인터넷 실명제 논란에 대해 “아무런 두려움 없이 익명으로 말할 수 있게 해야 민주주의가 가능하다”고 논평했다.

그러나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가 침해되어선 안 된다는 당위성만 강조하기에는 각종 역기능의 오염도가 너무 심하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진작 한국의 인터넷 세상을 ‘World Wide Web’이 아닌 ‘Wired Wired World(요지경)’라고 풍자했듯이 이번 총선 기간의 사이버 불법 선거운동은 요지경 그 자체였다. 무분별한 비방과 욕설, 유언비어의 유통은 PC를 끄고 싶게 만들 정도였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4월 15일 집계에 따르면 사이버 불법 선거운동은 모두 278건으로 16대 총선(25건)에 비해 11배 이상으로 증가했고, 특히 법 위반에 해당하지만 조치하지 않고 삭제를 요구한 경우도 1만2044건이나 된다니 그 심각성을 알 수 있다.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웰빙(well being) 열풍이 불고 있건만 사이버 문화만큼은 ‘웰빙’이 되려면 한참 멀었다는 개탄이 절로 나온다. 어쩌면 ‘디지털 선거전’의 눈부신 진화가 오히려 ‘배드빙(bad being)’을 부추기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렇게 쏟아져 나온 사이버 선거사범을 어떻게 할 것인가, 또 앞으로도 계속 기승을 부릴 사이버 명예훼손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한국정보문화진흥원(www.kado.or.kr)이 지난해부터 ‘사이버범죄 교화사업’을 시행한 것이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다. 이 사업은 전문적 교화활동으로 재범을 막고 범죄를 예방하는 효과를 겨냥한다. 지난해에는 서울보호관찰소 남부지소 1개소만 시범협력을 했으나 올해부터는 수도권과 전국 각 지역으로 그 범위를 넓혀 나가게 된다. 대상자들은 중독성 체크, 인터넷 사용 조절, 진로 상담 등을 통해 ‘건강한 네티즌’으로 거듭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거친다.

사이버 공간의 건강성을 회복하지 않고서는 ‘디지털 웰빙’은 있을 수 없고, 인터넷 실명제도 백년하청일 뿐이다. 또 우리의 인터넷 공간이 계속 ‘타락한 광장’으로 남을 경우 국내총생산(GDP) 증가의 기여도가 35%나 되는 정보기술(IT) 부문의 입지는 갈수록 허약해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사이버 윤리’는 바로 우리의 경쟁력이다.

손연기 한국정보문화진흥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