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포함해 아시아 지역에서 10여년간 취재를 해 왔다.
이번 한국 총선은 역대 어느 선거보다 투명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각종 금품 향응을 제공해 ‘돈 정치, 돈 선거’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과거와는 달리 비교적 공정한 게임이 벌어지고 있고 불법 및 탈법 사례가 눈에 띄게 없어졌다.
막판 들어 혼탁 현상이 나타나고 불법 탈법 신고 사례가 증가하고는 있지만, 그것은 선거관리위원회가 그만큼 ‘힘’을 갖고 제 역할을 하게 됐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다시 말해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성숙돼 가는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러나 찬찬히 살펴보면 아쉽고 개선돼야 할 점도 많다.
먼저 건전성을 갖춘 정책 중심의 선거라기보다는 ‘감성 정치’와 ‘이벤트성 캠페인’ 양상으로 치닫고 있지 않느냐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열린우리당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 가결 이후 엄청난 국민의 지지를 받았지만 선거정국에서 탄핵 심판만을 너무 강조했다. 지지율을 지켜내고 뒷받침할 만한 정책 중심의 전략적 준비도 모자랐다. 이어진 정동영 의장의 노년층 폄훼 발언은 사태를 악화시켰다.
한나라당 역시 박근혜 대표를 앞세워 ‘박정희 대통령의 딸’, ‘거대여당 견제론’이라는 측면만을 강조하고 있다.
민주당의 경우 추미애(秋美愛) 선대위원장을 전면 배치해 이라크 파병 철회론의 전략적 쟁점화를 시도하는 등 전통적 지지자들을 결속시키려 했다.
그러나 이런 이슈들이 어떻게 해서 총선의 주요 의제가 되어야 하는지 납득하기 어려웠다.
각 정당은 그보다 국민의 일상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민생 관련 정책들을 내놓아야 하는 것 아닌가. 철저히 정치적인 계산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반적인 의제 설정에서도 모든 당이 비슷하다는 느낌이다. 민주노동당만이 나름대로 정책 차별성을 지녔다고 평가할 수 있다.
나는 호주 출신인데, 호주에서는 선거 때마다 후보들이 정책 위주의 공약을 제시하고 국민은 그 정책이 얼마나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성이 있는가를 꼼꼼히 따져 투표한다. 한마디로 철저한 정책선거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 선거는 아직 그런 단계에까지 이르지 못한 것 같다. 물론 정치권에 1차적 책임이 있지만 언론에도 책임이 있다.
감정적, 감성적 안건 등을 주요 기사로 내보내고 이런 풍토를 부추기는 역할을 하는 데 일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과 언론의 성숙함이 아쉽다.
존 라킨 타임지 서울특파원
정리=김정안기자 cred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