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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46년 처칠 ‘철의 장막’ 연설

입력 | 2004-03-04 20:24:00


“발트해의 스테틴으로부터 아드리아해의 트리에스테에 이르기까지 철의 장막이 유럽 대륙을 가로지르며 내려지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총선에서 충격적인 패배를 경험해야 했던 ‘승전의 영웅’ 윈스턴 처칠. 1946년 3월 야인의 몸으로 미국을 방문했던 그의 ‘철의 장막’ 연설은 ‘연합국의 승리로 환하게 밝혀진’ 세계에 일순 어둠의 그림자를 드리웠다.

냉전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타종(打鐘)이었다.

동유럽을 온통 붉게 물들이고 있던 소련을 경계한 처칠의 연설은 종전 후 새로운 세계질서를 냉전구도로 ‘획정’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당시 균열을 보이고 있던 동서(東西)진영에 이념의 색깔을 칠했다. 그리고 그것은 오랫동안 인류의 ‘고정관념’이 된다.

‘언어는 존재의 집’(하이데거)이라고 했던가. ‘우리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인식하는 그대로 세계가 존재한다’(칸트)고 했던가. 말은 세계를 규정하고 역사를 이끄는 힘이다.

말의 힘을 누구보다도 깊이 이해했다는 레이건 대통령. 그는 구소련을 ‘악의 제국’으로 지칭함으로써 소련을 봉쇄하고자 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은 냉전 이후 ‘새로운 적’을 찾고자 함이었다.

1994년 옐친 러시아대통령은 북대서양조약기구가 동유럽권으로 세력을 뻗치자 ‘싸늘한 평화(Cold Peace)’라고 경고했다. 냉전에 빗댄 위협이었다. 엄살이었다.

처칠의 ‘철의 장막’도 일종의 정치적 상징조작이었다.

동서 분할체제의 단초가 된 독일의 분단이야말로 전승국들의 묵계에 의한 것이 아니었던가. “독일을 너무 사랑하기에 두개의 독일을 원한다?”(프랑수아 모리아크)

과연 냉전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소련인가, 미국인가.

1992년 5월. 권좌에서 밀려난 고르바초프는 묘하게도 처칠이 연설했던 바로 그 장소(미국 웨스트민스터대)에서 냉전시대의 종식을 고하게 된다. 미 언론은 ‘고르비, 냉전을 파묻다’라고 제목을 뽑았다.

이때 그는 처칠의 제스처인 승리의 V자를 그려보였다. 고르비의 V자. 그것은 의미심장했고, 또한 아이로니컬했다.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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